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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시131

끌림/5 끌림 황여정 15층 허공 베란다에 놓인 꽃들이 모두 창가로 얼굴을 내민다 밝음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끌림 그대 마음속에 햇살 같은 밝음 혹은, 따스함 한 자락이 사람을 부른다 먼 빛에도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그리움은 그대 눈빛 속에 깃든 맑은 바람이다 해마다, 길을 잃지 않고 찾아오는 꽃들 아랫목 같은 온기의 끌림에 따라온다 2021. 2. 21.
가을 숲에서/4 가을 숲에서 황여정 이제 들립니다 당신의 숨겨둔 금빛 언어가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한 무리의 바람 같기도 하고 한 줌의 소나기 같기도 하던 시간들 골목길을 서성거리던 발걸음이 저무는 날 제 집으로 돌아오는 평안이 보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 우리의 눈빛이 무엇을 향했는지 우리는 무슨 말을 나누며 저 강을 건너왔는지 나무들의 이야기가 조그 조근 들려오는 가을 숲에 귀를 기울입니다 오 나의 나무는 땅속에서 어둠을 헤치고 세상을 향해 여린 발돋움을 하며 참새의 부리처럼 쉼 없이 꿈을 쪼아대었지 그러나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천형을 안고 땅속 깊이 뿌리내린 슬픔 슬픔은 오래도록 굳어져 보석처럼 단단해지고 더 이상 꿈꾸지 않는 바위처럼 견디는 초록의 무게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사람들은.. 2021. 2. 21.
저녁안부/시집소개 저녁안부(양장본 HardCover) 황여정 시집 저자 황여정 출판 그루 | 2021.1.11. 페이지수144 | 사이즈 127*192mm 판매가서적 10,800원 책소개 인간 내면을 성찰하는 따뜻함과 맑은 숨결, 여성 특유의 섬세한 느낌들이 편편마다 살아 있다. 소소한 삶에서 만나는 자신만의 경험들을, 그리움과 슬픔의 빛깔을 잘 형상화 시킨 치유의 언어들이 울림을 준다. 치유와 소통, 그 의미들이 이번 시집이 갖는 하나의 미덕이다. 화자인 시인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 하루에게 보내는 구어체의 시 ‘저녁 안부’ 과연 내가 삶을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철학이 엿보이는 성찰과 치유의 시다. 마음속 가시를 뺀 삶을, 삶에 윤기를 주는 웃음을, 우리에게 그런 넉넉한 표정의 철학이 아름답지 않은가를.. 2021. 2. 14.
미안하다/3 미안하다 황여정 물 빠진 순천만 갈대숲에서 뒤뚱거리는 짱뚱어를 본다 온몸을 진흙에 맡긴 채 구멍 속으로 들락거리며 술래잡기를 한다 뻘 속에서 뻘을 닦아내려 뻘밭을 기어 다닌 날들 좀처럼 열리지 않는 문짝은 너무 완강하거나 이미 녹슬어 상처를 남겼지 긴 시간들이 순천만 노을에 젖어든다 아 짱뚱어 같기도 했던가 갈대꽃 스치는 바람이기도 했던가 그때는 정오쯤이기도 했던가 그래, 지금은 다 미안하다 2015. 10. 7. 12:02:42 2021. 2. 11.
그리움을 팔다/2 그리움을 팔다 황여정 11월이 저물어 가면 노을도 장작불처럼 붉게 타오른다 술향기처럼 익어가던 숲은 단풍을 걸러내고 나무는 점차 빈약해지는데 어쩌자고 나는 우물처럼 자꾸 깊어만 가는지 아직은 마지막이 아니라는 여유는 변명이고 억지처럼 매달려 빈 들녘에 눈물을 쏟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바람을 타는 마음은 자주 흔들리고 아프다 12월이 오기 전에 이제 그리움을 팔아야겠다 술과 노래로 치장한 시간들은 너무 익어서 허물어지고 삭아내리는 이 아득한 계절 뼈대만 남은 나무들에게 내 그리움을 전매한다 2018. 12. 13. 11:41:20 2021. 2. 7.
선암매 선암매 황여정 3월 끝자락 꽃소식 하 애가 타 한 걸음에 달려간 선암사 봄볕은 늘어져 하늘거리는데 꽃망울 왔다간 자리 너무 서운해 밤 내내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을 얹어 보내지만 해마다 야윈 말 한마디 남겨둔 빈 가지 선암사의 봄은 늘 짝사랑이다 선암매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순천 선암사에 있으며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백매화 2020. 11. 11.
낭송을 위한 시 9월의 길목 황여정 휴가의 마지막 날처럼 순간이 마디마다 짜릿하게 걸린다 저녁놀같은 눈물이 뭉클 솟는다 내 생의 절반이 울대에 걸리며 넘어지더니 덩달아 9월로 건너는 징검다리가 유난히 아프다 해가 짧아지고 어둠살이 깊어지고 분주한 하루는 과속이다 이즈음에는 그 흔한 독수리의 눈처럼 매달린 속도위반을 측정하는 단속장비도 없다 배롱은 아직도 붉은 꽃을 피워 올리는데 저 꽃, 얼마나 깊고 깊은 어둠속에서 건져 올린 뿌리의 해탈인가 내 어둠의 뿌리는 어디 쯤에서 빛을 건져올리는가 언제쯤 해탈의 꽃을 피워 올리는 가 오관을 서성이던 희로애락은 지금 쯤 김칫독처럼 익어가는가 9월의 길목을 건너는 징검다리, 참 아프다 저녁 안부 황여정 오랫동안 안부를 전하지 못했어 아침은 언제나 밖으로 열리고 낯선 하루를 맞이하느라.. 2020. 8. 13.
봄날, 하객이 없네 봄날, 하객이 없네 황여정 천지에 꽃들의 잔치가 시작되었지만 어느 곳에도 하객이 없네 산과 들에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건만 아, 관중석은 텅텅 비어 있네 골목을 서성이는 봄바람도 저 혼자 휘돌아나오는 고요가 슬프네 살다가도 이런 숨바꼭질은 처음이네 코로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모두가 숨어서 망을 보네 언제까지 도망을 가야 되는지 사람들은 아직도 모른다고하네 봄이 오면 강물이 풀리듯 대문밖으로 사람들이 나올줄 알았는데 이놈의 술래잡기는 세계를 넘나들며 끝이 없네 미안하다 봄에 피는 꽃들아 언땅속에서 쏙 고개를 내밀때도 감감해야했고 탱글한 꽃봉오리 탁 터지는 그 순간도 꽃그늘 아래 둥근 웃음 펼치지 못했네 언제 우리가 싸우기라도 했나 마음 상한 일도 없으면서 서로 외면한 봄날은 내생애 처음이다 2020.4.. 2020. 4. 12.
코로나19, 봄을 김장하다 코로나19, 봄을 김장하다 황여정 묵은지를 털어서 쌈을 산다 곰삭은 맛이 입에 착 감긴다 12번을 죽었다 삭힌 맛이라서 쌈을 해도 조림을 해도 척척 어울리는 맛이다 코로나 19로 대구경북은 모두가 자가격리되었다 조금만 참자 견디자 하던 시간이 한 달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꽃은 흐.. 2020.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