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봄을 김장하다
황여정
묵은지를 털어서
쌈을 산다
곰삭은 맛이
입에 착 감긴다
12번을 죽었다
삭힌 맛이라서
쌈을 해도 조림을 해도
척척 어울리는 맛이다
코로나 19로
대구경북은 모두가
자가격리되었다
조금만 참자
견디자 하던 시간이
한 달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갑갑증에 입맛만
사라진 게 아니다
오늘은
책 읽으며 괜찮은 하루
오늘도 영화 보며
버티는 하루
내일은
묵은 청소하며 개운한 하루
내일도
내일도
코로나19는 세계를 공격하고
그동안
펄펄 끓는 하루가
내려앉기를 수십 번
노인들의 꾸부정한 발걸음과
조용히 조용히
스케이팅처럼 흐르는 자동차들
사이로
승객 없는 버스가
[휴업] 가게문을 스치며 지나간다
일생일대의
첫 경험치고는 너무나
짜고 맵고 캄캄한
항아리속
배추 같은 날들이다
꽃피는 봄날이
푹푹 저 혼자 익어간다
코로나19의 시간들
부디, 곰삭은 맛으로
잘 익어라
2020.3.24.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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