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에서
황여정
이제 들립니다
당신의 숨겨둔 금빛 언어가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한 무리의 바람 같기도 하고
한 줌의 소나기 같기도 하던 시간들
골목길을 서성거리던 발걸음이
저무는 날 제 집으로 돌아오는 평안이
보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
우리의 눈빛이 무엇을 향했는지
우리는 무슨 말을 나누며 저 강을 건너왔는지
나무들의 이야기가 조그 조근 들려오는
가을 숲에 귀를 기울입니다
오 나의 나무는
땅속에서 어둠을 헤치고
세상을 향해 여린 발돋움을 하며
참새의 부리처럼 쉼 없이 꿈을 쪼아대었지
그러나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천형을 안고 땅속 깊이 뿌리내린 슬픔
슬픔은 오래도록 굳어져 보석처럼 단단해지고
더 이상 꿈꾸지 않는 바위처럼 견디는 초록의 무게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우물 속에 내리는 어둠
그 속에서 마르지 않는
물이 자라고
하마나 하마나 더위에
몸살 앓던 여름은 지나가고
내 생의 한 여름도 계절을 바꾸었습니다
단풍의 잎맥 같은 시간들이
숲에 내리는 날, 오늘 같은 날이 오면
한 움큼 쏟아지는 노을빛 언어
단풍처럼 물이든 너와 나의 마음이 만나다니
가지처럼 서로의 어깨를 껴안으며
아
우리가 함께 어울린 가을 숲이 되다니
당신의 숨겨둔 언어가
환하게 드러나는
이 저녁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