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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시

가을 숲에서/4

by 매화연가 2021. 2. 21.

가을 숲에서

 

황여정

 

이제 들립니다

당신의 숨겨둔 금빛 언어가

제 마음에 들어옵니다

 

한 무리의 바람 같기도 하고

한 줌의 소나기 같기도 하던 시간들

골목길을 서성거리던 발걸음이

저무는 날 제 집으로 돌아오는 평안이

보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

우리의 눈빛이 무엇을 향했는지

우리는 무슨 말을 나누며 저 강을 건너왔는지

나무들의 이야기가 조그 조근 들려오는

가을 숲에 귀를 기울입니다

 

오 나의 나무는

땅속에서 어둠을 헤치고

세상을 향해 여린 발돋움을 하며

참새의 부리처럼 쉼 없이 꿈을 쪼아대었지

그러나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천형을 안고 땅속 깊이 뿌리내린 슬픔

슬픔은 오래도록 굳어져 보석처럼 단단해지고

더 이상 꿈꾸지 않는 바위처럼 견디는 초록의 무게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우물 속에 내리는 어둠

그 속에서 마르지 않는

물이 자라고

 

하마나 하마나 더위에

몸살 앓던 여름은 지나가고

내 생의 한 여름도 계절을 바꾸었습니다

 

단풍의 잎맥 같은 시간들이

숲에 내리는 날, 오늘 같은 날이 오면

한 움큼 쏟아지는 노을빛 언어

 

단풍처럼 물이든 너와 나의 마음이 만나다니

가지처럼 서로의 어깨를 껴안으며

우리가 함께 어울린 가을 숲이 되다니

당신의 숨겨둔 언어가

환하게 드러나는

이 저녁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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