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뼈대
황여정
2월처럼 마음을 아리게 하는 달도 없다.
추위로 기세를 몰아 붙이는 겨울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훈풍이 부는 봄도 아닌
계절의 정체성을 가늠할 수 없는 달이기도 하다.
햇볕 따스한 날 차창으로 스치는 2월의 풍경을 바라보면 마음이 애잔해 지기도 하고 뒷자락을 붙잡고 울음이라도 터뜨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내면에는 나목을 바라보는 사색과 기다림의 시간, 그리고 겨울밤의 고요와 적막을 보내는 아쉬움과 함께 분주하게 다가오는 봄기운이 나를
비켜가는 듯한 세월의 무게가 버거워진 탓이라는 생각도 든다.
2월의 어느 볕 좋은 날에 만난 벚꽃 나무 가로수는 나목의 강렬한 선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검고 거친 등걸이 주는 이미지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는 듯 했고 저 확고한 의지가 겨울 추위 속에서 꽃눈을 키우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부드럽고 화사한 꽃을 피우는 벚꽃의 뼈대, 그 단단한 의지를 잎떨군 겨울나무에서 보았다
꽃의 뼈대
황여정
생을 부여 받는다는 건
찬란한 천형이다
꽃비 흩날리던
봄날의 기억이 초롱한데
맨 몸의 빈가지로 버티는 겨울
벚꽃나무 가로수에서
꽃의 뼈대를 본다
늘 푸른 상록이란
빈곤을 상실한 온실의 기억
시간 속에 발효를 상실한 부패처럼
어쩌면 계절을 버린 타성일지도 몰라
교만하지 않고
나약하지 않고
말없음으로 길어 올린 유연함이
가지 끝에 꿈을 퍼 올린다
견디는 일은
생의 외줄처럼 늘 흔들리고
계절의 고비마다 올린 묵언의 기도
다시
2월의 햇살 속에
꼼지락거리는 하늘 한 자락
튼실한 꽃의 뼈대가
키워 낸 봄, 꽃망울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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