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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사진과 글

꽃, 축제의 제물

by 매화연가 2016. 11. 2.

꽃, 축제의 제물


황여정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는
각 지방마다 축제의 천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계절마다 축제라는 이름을 걸고 사람들을 모으고 거금의 예산을 집행해서 행사를 치른다.
그 중에서 꽃과 관련된 축제가 가장 많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로부터 봄이 오면 부녀자들이 춘삼월 날씨가 좋은 날을 가려 산이나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

진달래꽃으로 전을 부쳐 먹으며 놀던 화전놀이가 있다.
화전놀이는 한 집안 일가친척 중에서도 특히 부녀들이 모여서 하던 것으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때부터 있었던 유풍으로 기록이 전해온다. 문중의 여성들이 뜻을 모아 시어른들의 승낙을

얻어 3월 삼짇날 전후에 날을 잡고 화전 재료와 과일, 감주, 육류 등 놀이에 필요한 준비를 하며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따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화전놀이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긴 겨울 움츠렸던 마음을 열고 꽃마중을 하는 것은 어쩌면 일년의

시작을 꽃처럼 아름답게 열고자 하는 소망이 담긴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꽃이 축제로 자리매김을 한

벚꽃 축제는 지역마다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겠지만 남쪽에서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진해 군항제를

꼽을 수 있다. 그 동안 몇 번을 진해까지 꽃구경을 갔다가 차량과 인파에 밀려 돌아온 적이 있어 아예

포기하고 말았는데 요즘은 아주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당일 관광버스를 이용하면 주차걱정이나

밀리는 차량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관광버스는 꽃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에 일행들을 내려놓고

자유시간을 준 다음 돌아갈 때 정해진 장소에서 타면 되니 얼마나 편리한가?
봄 햇살 아래 화사한 꽃을 나무 가득 달고 있는 벚꽃은 정말 아름답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보며 시정詩情이라도 다듬어야 제 격인데 꽃보다 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진 한 장도

제대로 찍을 수 가 없다. 축제장에는 꽃 보다 사람들이 더 많다.
등 굽은 노인들의 봄나들이, 초등학교 동창생들의 모임, 각종 단체 모임의 연수회, 가장을 등떠밀고 나온

가족 나들이, 연인들의 데이트 등등.
손에 손잡고 꽃구경을 나왔는데 이벤트는 사람보다 더 많다.
확성기를 울리는 노랫가락 소리, 온갖 종류의 먹거리 장터, 시장에서 잘 볼 수 없는 다양한 생활용품과 각 지방의

특산물 시장, 곳곳에 세워진 조형물들

꽃이 피었기에 사람들이 모였고 사람들이 모였기에 장터가 생기고 장터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고

 물건들을 사고팔고…….



하지만 내 기억속의 벚꽃은 아직도 밝고 환하기 만하다

어느 봄날이었다.
시내에서 가깝지만 제법 골도 깊고 산 중턱에는 약수터도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앞산에 갔다. 연록의 새순이 봄꽃들과 자리를 바꾸며 피어나는 산은 싱그럽기 그지없었다.
한참을 오르다 숨을 고르느라 고개를 드는 앞에 나타난 만개한 벚꽃 한 그루.
마음이 꽃보다 더 환하게 밝아졌다.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한참을 서서 바라보며 혼자 좋아했던 기억은 벚꽃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났다.

산속에서 홀로 피었다 홀로 지는 꽃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기쁨을 주다니…….
그 날 이후 꽃이 피면 사람의 마음을 꽃잎처럼 열리게 할 뿐만 아니고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이 부드럽고

평화로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어린 시절에 시골길을 걸으며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들꽃의 은밀한 언어를 들으며 자랄 수 있다면 인성교육을 강조하지 않아도 폭력이나 왕따같은 말들이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학교를 오가는 길에 어디에서 꽃 한송이를 만날 수 있으며 하늘 한번 쳐다 보고 걸을 수 있는 여유 또한 있는가?

현직에 교장으로 근무하면서 꽃을 심고 가꾸라고 강조를 해도 교실에 심어둔 꽃은 말라 죽거나 햇빛이 모자라 웃자라거나 하여

오히려 역효과를 주었다. 그래서 꽃피는 교정을 만드는 것이 심성의 변화에 큰 변화를 준다고 환경조성에 역점을 두기도 했다. 




봄꽃
 
황여정
 
꽃이 문을 연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온기
그 따스한 눈길이 문을 열게 한다
내가 웃을 때
그 때도 세상의 온기가
마음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창문처럼 열린 꽃잎 속을 들여다본다
숨겨진 꽃술마다 파르르 떨리는 꽃가루
세상을 향해 날아갈 준비가 다 되어있다
너의 미소는
내 꽃술을 훔쳐갈 수가 있다
온기가 닿으면 꽃잎처럼
열리는 마음

봄꽃들 속이 다 보인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어디에 무슨 꽃이 핀다는 꽃의 개화시기와 더불어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얼마 전에는 코스모스 축제로

이름난 곳이 있다기에 찾아갔다.시골 간이역에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나고 플랫폼에 내린 사람들은 코스모스를 보며

가을 서정을 만끽하고 그래서 사진작가들이 모여들고 관광객이 찾아들고 유명세를 탔던 곳인 것 같다. 지금은 새 역사驛舍를

 짓고 간이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축제장도 만들어 졌다기에 그곳에 찾아갔다. 가을이라는 계절 속에는 코스모스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코스모스가 피면 가을이 손에 잡히는 듯 하지 않은가? 흔히 우리의 인식 속에 있는 코스모스는 한적한 들길에 약간의

꽃들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으로 코스모스에 대한 서정이 살아 있다.
그런데 축제를 위해 대량으로 심어져 있는 코스모스 논뙈기와 대형 주차장과 북적이는 인파를 보는 순간 가을이 송두리째

달아나고 말았다.
벼를 심고 수확을 해야 할 들판에 코스모스가 양계장의 닭처럼 무더기로 사육되고 있는 이 느낌을 어쩌나?
분명 꽃은 코스모스이지만 코스모스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없다.
축제라는 이름으로 떼 지어 심어져서 피고 지는 꽃들은 그들의 정서를 잃고 말았다.
산수유 축제, 매화꽃 축제, 벚꽃 축제, 튤립 축제, 해바라기 축제, 메밀꽃 축제, 장미꽃 축제 코스모스 축제 등등.

얼마나 많은 꽃들을 논바닥에 퍼부어 놓고 사람들을 부를 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꽃을 보겠다고 길바닥을 메우며 달려갈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꽃의 본래정서와는 멀게 멀게 달아나고 있을지 축제를 위해 심어진 꽃들의 속을 생각해 본다.


2016.11.2.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