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31.18:00
푸른 잠에서 깨어난 아라홍연
7월의 더위에 굳게 입을 다문 나무들의 녹음이 무겁다.
7월에서 8월로 가는 숲의 모습은 마치 푸른 바위처럼 단단해 보인다.
미동도하지 않는 저 숲을 뭐라고 표현할까 한동안 고민을 했다.
푸른 바위 얼마나 멋지고 적당한 표현인가?
생의 반환점에 선 50대들이 견디는 삶의 무게처럼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저 담담함을 7월의 끝자락을 지나는 숲에서 느낀다.
연초록 봄의 환희는 언제였던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생명을 소진하면서 물이 드는 가을의 단풍은
저 묵묵함 속에서 잉태되고 있는가?
자연의 섭리는 끊이지 않는 선율로 빠르고 느리게 강하고 약하게 변화의 리듬을 준다.
파닥이는 봄의 환희가 제 자리 찾아 들어 조용해 질 즈음 과실나무들은 주렁주렁
가지마다 무겁게 과일들을 매달고 풍요를 주는가 하면
우산처럼 넓은 잎을 펼치며 진흙 속에서 꽃대를 밀어 올리는 연꽃도 있다.
연꽃이 한창이다.
무안 백연지
부여 궁남지
전주 덕진공원
영양의 서석지 등 오래된 연지에는 여름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인위적으로 논에다 연을 심어서 연꽃 단지를 조성해 놓은 곳도 많다.
연꽃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넓은 잎을 우산처럼 펼치고
그 잎 사이사이 봉긋이 고개를 내민 의연하고 한가로운 연꽃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물론 내가 연꽃을 찾아가는 이유는 사진을 찍기 위한 일이었으니
렌즈에 꽃 모양을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관심이었다.
이미지를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빛의 방향과 꽃을 바라보는 각도와
셔터의 속도에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꽃을 찾아가는 마음과 그 꽃이 주는 의미를 찾아서
떠나는 답사이다. 올해는 함안으로 가본다.
700년 전의 연 씨가 발견되었다는 놀라운 보도는 학문적인 이해를 넘어서
생명의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작은 씨앗이 썩지 않고, 변하지 않고,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이 주는
생명의 신비로움 그 현장을 보고 싶었다.
이름도 예쁜 아라홍연
함안 성산산성 유적지 내 연못에 대한 국립가야 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다수의 연 씨가 수습되었고
함안박물관에서는 그 연 씨 2알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하여 연대를 분석한 결과 지금으로부터 700여 년 전
고려시대의 연 씨임이 밝혀졌다.
한편 함안박물관에서는 농업기술센타와 공동으로 연 씨를 발아하여 2010년 처음으로 홍연을 꽃 피우는데 성공하였고
함안의 옛 이름을 따서 아라홍연이라 이름 짓고 함안박물관 입구에 아라홍연시배지를 조성해서
아라홍연의 순수혈통 보존에 힘쓴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이미 내 마음은 아라홍연에 대한 신비로운 선입견으로 가득하다.
그 선입견에 내 생각을 마구 덧씌워 눈앞에 피어있는 아라홍연을 보며 생각은
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어느 날 댕기머리 땋아 내리고 고운 치마를 입은 소녀들이
까르르 웃으며 손에 손잡고 연꽃 구경 나왔을 풍경을 상상해 보면
연지 가득 웃음처럼 펼쳐진 꽃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단아한 꽃 모양과 날렵한 꽃잎
꽃잎마다 선명하게 드러난 핏줄 같은 붉은 맥
자연이 만들어 낸 최고의 색감으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7월의 땡볕아래
힘차게 밀어올린 꽃대
연지 가득 웃음이 피어난다
여기까지 오느라
퍼 올린 생의 자맥질
꽃잎마다 드러난 붉은 길
겹겹이 선명하다
한계절 나비처럼 눈부신 날개짓
700년 푸른 잠 떨치고 여기
춤사위가 바람을 흔들며
아라홍연 꽃피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연꽃도 한때는 내 생각 밖의 꽃으로 밀려나 있었다.
가장 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것이 연꽃이다.
초파일 절마다 내거는 등도 연꽃모양이고 부처님을 모신 좌대도 연꽃좌대이다.
대체 연꽃과 부처님과는 어떤 연유로 연결되어있는가?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 특별히 연꽃이 많다는 건가?
여러 가지 의문이 솟았다.
연꽃은 불교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꽃이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處染常淨
연꽃은 더럽고 추하게 보이는 물속에 살아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이는 불자가 세속에 물들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바르게 산다는 의미와 통한다 .
둘째 花果同時
꽃망울과 씨방이 함께 자라며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수단이며 열매의 원인이 된다.
삶에서 인과의 도리를 가르친다.
셋째 一代詩敎
꽃잎이 피면서 열매를 보호하고 꽃잎이 떨어지면서 열매를 내어 보이고 나중에 열매만이 남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천지 우주가 불국토요 극락임을 가르치는 비유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불교의 발생과 연관된 여러 가지 설화 속에 연꽃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석가 탄생 때에 마야부인 주위에는 오색의 연꽃이 만발해 있었다고 한다.
또 부처님이 태어나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있을 때 땅에서 연꽃이 솟아올라 태자를 떠받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연꽃이 불교의 상징으로 굳어지게 된 데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이른바 부처님의 '염화시중(拈華示衆)'의 고사라고 할 것이다.
《무문관(無門關)》이란 책에는 부처님이 그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방법으로 어느 날 영산(靈山)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에게 꽃을 꺾어 보인다.
아무도 그 행위의 뜻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오직 가섭(迦葉)만이 부처님이 든 꽃을 보고 빙긋이 웃었다.
꽃과 웃음이 동일한 의미라는 것이다. 그때 부처님이 가섭을 향해 "네가 법이 무엇인지를 아는구나"라고 말하고 그에게 법통을 이양했다는 이야기다.
흔히 이 광경을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말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불교와 연꽃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 3. 10. (주)넥서스)
한 송이의 꽃에 사람들은 참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느낀다.
이제 나도 연꽃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깨고 해마다 7월이 오면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는 연꽃을 만날 것이며
또한 시시때때로 코끝에 다가오는 그 향기를 가슴에 품어 안고 올 것이다.
연꽃처럼 의연하고 싶어서
호젓하되 향기롭고 싶어서
함부로 젖어들지 않고 싶어서
오래도록 꿈을 잊지않고 싶어서
이름도 예쁜 아라홍연을 찾아갈 것이다.
'발자국 > 사진과 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중섭, 100년의 신화/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0) | 2016.10.04 |
---|---|
북천역과 코스모스 (0) | 2016.10.03 |
연지에 비 내리다 (0) | 2016.07.26 |
700년의 꿈에서 깨어나다 (0) | 2016.07.23 |
백련사 동백 숲 (0) | 2016.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