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안부, 동백꽃 피다
황여정
풀렸다 얼었다 하면서도 봄은 남해안에서부터 꽃소식을 전해온다.
봄꽃들은 대체로 부드럽고 가볍게 꽃눈을 여는데 동백은 단단하다. 남해 해안 길을 가다 보면 하늘을 스크레칭 한 듯 엉클어진
나목의 가지 사이로 윤기 나는 푸른 잎이 보이는 곳은 동백나무 서너 그루가 있는 곳이다. 빚어 놓은 듯 반듯하고 푸른 동백 잎이
방금 기름에서 건져 올린 듯 햇빛에 반짝인다. 그 푸른 잎새 사이로 봉긋하게 햇살을 물고 있는 동백은 늘 말문을 열 듯 말 듯한
수줍은 자태다. 제 속을 열어야 활짝 피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동백은 절대로 꽃잎을 활짝 열지 않는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동백의 꽃말)’란 그 말이 힘들어서일까?
그리고 그 답을 얻지 못해서일까?
아직 꽃잎이 생생한데도 뚝뚝 떨어져 길 위에 몸을 누인다.
이제 3월이다. 바람결에 전해오는 꽃소식이 붉다.
겨울 지난 동백이 얼굴을 내미는 거제도 지심도로 길을 떠난다.
계절 마다 꽃이 피는 곳을 찾아 길을 떠날 때면 늘 기대감에 마음이 설렌다. 절정기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인터넷에 소개되고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찾아가지만 실망과 환희를 번갈아가면서 맛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동백꽃을 찾아 다닌지 3년이 지나도록 내가 그리는 동백의 절대 이미지 - 기름이 뚝뚝 흐르는 푸른 잎새속에 수줍은 듯 쫑긋거리는
붉은 꽃망울을 가득히 매단 동백나무-를 만나지 못했고 그럴수록 해마다 이곳저곳을 더욱 기웃거려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강진의 백련사 동백 숲에 갔을때도 시든 꽃잎 몇 장만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관광지로 이름난 제주도
위미리 동백 숲도 물어물어 찾아갔지만 몇 백년이나 된 거목의 동백나무에도 꽃의 흔적은 쉬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제주 신흥리
동백마을로 갔지만 그곳도 내 기대감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선운사 춘백도 오동도 동백섬도 갈 때마다 꽃이 지거나 덜 핀 상태여서
아쉬움을 남겼다.
오늘 지심도는 내게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
잠시 꽃샘추위로 얼어붙은 날씨가 오후에는 제법 따뜻하다. 역시 유명세를 탄 지심도는 평일인데도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배편은 운항시간마다 서너대씩 증편되어 운항한다.
장승포터미널을 떠난 배는 잠간 사이에 지심도에 도착했고 승객들은 동백꽃을 찾아 모두 숲으로 난 길을 더듬어 올라갔다.
몇 년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전에 없던 민박집이며 가게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푸른 숲으로 둥글게 덮인 지심도 동백터널에서 꽃보다 먼저 동백나무들이 몸으로 전하는 시간의 흔적을 보았다. 섬을 덮고 있는
동백은 모두 뭍으로 나가겠다는 듯이 바다로 기울어져 있었고 그 나무들을 한사코 거머쥐고 있는 섬. 지심도의 동백은 꽃보다 바다로
휘어진 동백나무들의 몸짓이 더 슬프다.
오랜 세월 해풍을 견디며 굽은 허리로 피워 내는 꽃, 아직은 때가 이르다고 눈물같은 꽃망울만 그렁그렁 매달고 있다.
아! 올해도 내 동백 기행은 부풀린 풍선처럼 잔뜩 기대감만 안고 다음을 기약해야하나? 뚝뚝 떨어져 누운 꽃잎을 보며 몸져누울
마음자리 하나 만들려나 기대했지만 섬에 발붙인 동백나무의 휘어진 몸짓만 보고 돌아왔다.
그리운 이여
동백꽃 안부를 전하고 싶은 3월
오래도록 그대 안에 봄이 머물기를...
동백
황여정
남쪽 바닷가에
붉은 동백이 피었습니다
불현 듯
내 가슴에 그대 안부 그리워
봄 편지를 띄웁니다
세월이 가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겨울지난 꽃눈 같은
푸른 밤하늘 초승달 같은
생각만으로 환해지는 마음이 있습니다
길을 떠나야겠지요
겨울을 보내는 2월의 애잔한 햇살,
뒷덜미 속에 담긴 슬픔을 비워내고
마음을 추스르면
지난 겨울을 믿지 못해
조금은 쓸쓸하고
삐쳐있던 마음이 보입니다
계절의 순환처럼
시시때때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도
사람과 사람의 길처럼
3월의 꽃눈 속에 다 보입니다
남쪽 바닷가
붉은 동백이 그대에게
안부의 길을 열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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