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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시

미안하다

by 매화연가 2023. 12. 18.

 

미안하다

 

황여졍

 

물 빠진 순천만 갈대숲에서

뒤뚱거리는 짱뚱어를 본다

 

온몸을 진흙에 맡긴 채

구멍 속으로 들락거리며

술래잡기를 한다

 

뻘 속에서 

뻘을 닦아내려

뻘밭을 기어 다닌 날들

 

좀처럼 열리지 않는 문짝은 

너무 완강하거나 

이미 녹슬어

상처를 남겼지

 

긴 시간들이 

순천만 노을에 젖어든다

 

아,

짱뚱어 같기도 했던가

갈대꽃 스치는 바람이기도 했던가

그때는 정오쯤이기도 했던가

 

그래, 지금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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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이 

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때면 

우리는 서로서로 

가야할 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느슨하게 열린 몸도 마음도 

이제는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 지금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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