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황여졍
물 빠진 순천만 갈대숲에서
뒤뚱거리는 짱뚱어를 본다
온몸을 진흙에 맡긴 채
구멍 속으로 들락거리며
술래잡기를 한다
뻘 속에서
뻘을 닦아내려
뻘밭을 기어 다닌 날들
좀처럼 열리지 않는 문짝은
너무 완강하거나
이미 녹슬어
상처를 남겼지
긴 시간들이
순천만 노을에 젖어든다
아,
짱뚱어 같기도 했던가
갈대꽃 스치는 바람이기도 했던가
그때는 정오쯤이기도 했던가
그래, 지금은
다
미안하다
****************************************************************************
지난 날이
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때면
우리는 서로서로
가야할 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느슨하게 열린 몸도 마음도
이제는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 지금은
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