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5.
즐거운 한때
고영
창을 두드리는 장대비가
방안 구석구석 빗소리를 남기고 갑니다
몸만 풀고 가기엔 아무래도 섭섭했던 모양이군요
책 속에도 빗소리로 가득합니다
저 떡갈나무 장대비가 숲을 건너가기 전에
나는 빗소리를 담아 두려 했습니다
빗방울을 움켜쥐고 있는 도토리들
도토리를 쏘아 올리는 흥겨운 떡갈나무들
숲속에 펼쳐진 저 춤사위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발끝이 들려, 마음이 들려
어느새 신명난 구결꾼이 되고 맙니다
징소리가 된 빗소리
꽹과리가 된 떡갈나무 숲속
옹이투성이 나무의 잎도 빗소리에 긁히니
한가락 노래가 되는군요
한바탕 잔치가 질퍽한 걸 보니
아무래도 오늘밤은
빗소리를 떠나보내긴 글렀나 봅니다
어린 나무들까지 저렇듯 모여 앉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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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숲속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내 마음의 풍금소리처럼 맑고 경쾌하고
한바탕 울음뒤에 느끼는 개운함 같은
빗소리
지금도 겨울비가 내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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