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자국/여행

이탈리아/피렌체

by 매화연가 2020. 2. 26.

2019.10.24 (목)12:30. 인천공항 출발  OZ561   2019.10.24 (목)17:50.  로마 도착

2019.11.3.(일)20:50  런던히드로공항 출발  OZ522  2019.11.4(월)15:50 인천공항 도착

여행사 노랑풍선

여행경비 2,590,000원

방문도시

인천-로마(2)-나폼쏘-로마(1)-오르비에또-아씨시-키안치노(1)-피사-친퀘테레-프라토(1)

-피렌체-베니스(1)-밀라노(1)인터라켄(1)벨포르-파리(2)-유로스타-런던-기내박(1)-인천


[피렌체]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는 많은 예술가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도시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단테 등이 모두 피렌체 출신이며,

그 밖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세계 최고의 예술의 도시로 부흥시켰다. .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지 곳곳에는 이들이 남긴 유적과 예술 작품이 남아 있는데, 

오늘날의 피렌체는 쇼핑의 도시이기도 하다.

유명한 고급 브랜드들이 피렌체에서 처음 생겨났고, 명품 아웃렛이 있어 쇼핑을 좋아하는 이에게 꿈의 도시이다.





[메디치가]

메디치가(이탈리아어: Medici)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던 가문이다.

죠반니 디 비치 메디치는 은행가였으며, 그의 아들 코지모는 정치적으로 수완이 좋아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다.

그 가운데서도 위대한 로렌초는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로 가장 유명하다. 나중에는 혼인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 왕실의 일원까지 되었다.  

다른 귀족 가문들처럼 그들도 자기네 도시 정부를 지배하였다. 메디치 가문은 자신들의 권력 아래 피렌체를 두었으며,

예술과 인문주의가 융성한 환경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밀라노의 비스콘티와 스포르차, 페라라의 에스테, 만토바의 곤차가 등

다른 위대한 귀족 가문과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어내는 큰 역할을 하였다

메디치가는 네 명의 교황(레오 10, 클레멘스 7, 피우스 4, 레오 11)과 피렌체의 통치자를 배출하였으니

이 가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산 로렌초 성당]San Lorenzo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피렌체 중앙 시장 한 켠에 있는 산 로렌초 성당은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최초의 성당으로 1421년에 브루넬레스키가 착공했다.

이 성당 이후에 지어진 피렌체의 르네상스 성당 건축에서 이 성당이 그 본보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브루넬레스키가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완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교황 레오 10세가 전면부의 건축을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전면부는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지만 미완성인 상태가 오히려

더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이 성당은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교구로 사용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제단 뒤쪽으로는 메디치가의 가족 묘지가 있다.

성당의 복도 끝에는 브루넬레스키가 만든 구 성물실이 있는데, 이 방은 도나텔로가 장식을 맡았으며 내부에는 도나텔로의 흉상이 있다.

성당 정면 왼쪽에는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오르면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이 나온다.

이 도서관에는 메디치가에서 수집한 도서들이 소장되어 있다. 성당 뒤쪽에 있는 메디치가의 예배당에는 미켈란젤로가 건축한

‘신 성물실’과 ‘왕자의 예배당’이 있다. 신 성물실에는 로렌초 2세와 줄리아노 디 메디치의 무덤이 있다.




 [베키오 다리]

1345년에 건설된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원래 이 자리에는 로마 시대에 지어진 나무 다리가 있었는데,

홍수로 휩쓸려가자 새로 건설한 것이다. 다리의 설계는 지오토의 제자인 타데오 가디가 맡았으며, 아르노 강의 가장 좁은 곳에 세워졌다.

원래 이 다리 위의 상점에는 푸줏간 등이 많아서 늘 냄새가 고약했는데, 가까이 궁전이 있었기 때문에 페르디난도 1세는 궁전 주변에 어울릴만한

보석상들을 이 다리의 상점에 들어서게 하면서 기존에 있던 상점들은 철거했다.

다리 가운데에 있는 흉상은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금 세공인인 벤베누토 첼리니이다.

이 다리에서 바라보는 아르노 강의 풍경이 아름다운 데다가, 세기의 연인인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난 곳이기 때문에

더욱 낭만적인 장소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다리와 주변에는 자물쇠가 많이 채워져 있다.

사랑의 징표인 자물쇠를 열쇠로 채우고, 열쇠를 강에 던져 버리는 연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산 조반니 세례당] Battistero S.Giovanni   단테가 세례를 받은 세례당

두오모 정면 앞에는 팔각형 건물인 산 조반니 세례당이 있는데,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건축물로 11~13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례당은 피렌체의 수호 성인인 산 조반니(성 요한)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두오모가 완성되기 전까지 피렌체의 대성당으로 사용되었다.

이 성당에서 단테가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세례당에는 세 개의 청동문이 있는데, 남쪽에 만들어진 문은 안드레아 피사노의 작품이고,

북쪽 문과 동쪽 문은 로렌초 기베르티의 작품이다. 세 개의 문 중 동쪽의 출입문이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극찬했던 문이다.

천국의 문의 원본은 두오모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으며,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부터 솔로몬의 이야기까지의 구약 성서 내용이 담겨 있다.

내부에 들어가면, ‘최후의 심판’과 ‘창세기’를 주제로 한 모자이크 장식이 화려한 쿠폴라를 볼 수 있다.




[피렌체 두오모]

피렌체를 대표하는 대성당, 두오모는 피렌체에서 가장 높이가 큰 건축물이자,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큰 성당이다.

특히, 하얀색, 핑크색, 녹색의 대리석이 기하학 무늬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있는데,

원래 이름은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다.

성당의 건축은 1296년 시작되어 1371년 본당이 완공되었고, 돔은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1437년 완공된 것이다.

브루넬레스키는 아무런 철근이나 콘크리트의 도움 없이 벽돌만으로 돔을 쌓아 올렸다.

돔의 내부에는 바사리와 그의 제자들이 그린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으며, 돔의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어

463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멋진 피렌체의 전경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 된 두오모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거나

새로운 인연을 꿈꾸게 하는 낭만을 간직한 곳으로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다.






대성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긴 줄서기


마치 색종이로 짜 맞춘듯한 대리석의 정교하고 화려함에 감탄을 하며 대성당을 끼고 동네 한바퀴 돌듯이 돌아 본다




[지오토의 종루] Campanile di Giotto 지오토가 설계한 종루

두오모 바로 옆에 있는 이 종루는 화가이자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인 지오토가 설계한 것으로 1334년 처음 건축을 시작해,

지오토가 죽은지 22년이 지난 1359년 완공되었다. 높이 82m의 이 탑은 디자인과 색채의 조화, 그리고 조각된 섬세한 부조까지 두오모와 함께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414개의 계단을 오르면 종루의 정상에 오르게 되는데, 두오모와 함께 피렌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두오모의 돔 전망대보다 한적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시뇨리아 광장]

시뇨리아 광장은 중세 이후 지금까지 피렌체의 행정의 중심지다. 지금도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베키오 궁전과 르네상스 시대 유명 예술인들의 조각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옥외 미술관 로지아 데이 란치를 볼 수 있다.

주변으로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회화 걸작들을 모아 놓은 우피치 미술관과 아르노 강에 놓인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폰테 베키오가 있다.

시뇨리아 광장은 메디치 가문이 살고 있던 베키오 궁전과 함께 융성한 곳이다.
시뇨리아 광장이 피렌체의 중심으로 활약한 것은 13, 14세기였다.

이때 활동한 작가가 단테, 지오토, 페트라르카 그리고 보카치오다. 그 이후에도 계속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장악했는데

이때 활동한 예술가로는 브루넬레스키, 마사초, 베아토, 안젤리코, 필리페, 리피,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이 있다.











[단테의 흉상]

단테 기념관 앞의 작은 광장 바닥에는 단테의 흉상이 있다. 이 흉상을 밟으면 행운이 온다고 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이 흉상을 찾기 위해 단테 기념관 앞의 바닥을 뚫어져라 뒤진다. 그냥 보면 단테의 흉상이 보이지 않고 물을 뿌려야만 보이기 때문에, 간혹 가이드 투어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 뿌려진 물을 보면 단테의 흉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원래 단테가 살던 집은 없어졌지만, 피렌체 시가 단테가 살았던 위치의 건물을 사들여 단테 기념관으로 지은 곳이다. 단테는 1265년 5월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드란데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후에 단테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기념관은 단테 탄생 700주년이었던 1965년 처음 문을 열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는데, 일곱 개의 방에 걸쳐 단테의 침실과 서재, 그리고 그의 행적을 시대별로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특히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단테의 〈신곡〉 전편을 인쇄한 것을 계단 벽에 걸어 두었고, 한국어를 비롯한 전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단테의 〈신곡〉을 볼 수 있다.

보티첼리가 그린 〈신곡〉의 삽화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단테는 35세 때 정치적인 이유로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죽을 때까지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르네상스 시대의 4대 시인으로 손꼽히며 피렌체에서 인정받는 시인이지만, 예술가의 쓸쓸한 최후는 안타깝다. 이 집 근처에는 단테의 애인인 베이트리체가 살았었다고 하지만,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발자국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탈리아/베네치아  (0) 2020.03.20
이탈리아/베로나  (0) 2020.02.29
이탈리아/친퀘 테레  (0) 2020.02.25
이탈리아/오르비에토 두오모성당  (0) 2020.02.25
이탈리아/오르비에토  (0) 2020.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