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21. 7일차 마지막 밤
남부 지방의 여행 일정을 끝내고 다시 이스탄불로 6시간 버스로 이동을 한다.
사실 터키를 여행하는 동안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와 안탈랴로 이동하는 6시간의 과정이 가장 힘이 든다.
오가는 길에서 다양한 자연환경을 접하는 재미도 있지만 내내 버스속에서 앉아 있어야 하는 것도 고통스럽다.
해바라기꽃이 다 시들었다. 아마도 20일 전 쯤에 왔다면 끝없는 해바라기 풍경에 얼마나 즐거웠을까!!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두번째 왕궁으로 181년의 대화재로 대부분 불타고 31대 술탄인 압둘메지드에 의해서 1843~1856년에 걸쳐서 석조궁전으로 재건되었다.유럽에서 보내온 수많은 헌상품들과 선명한 색채가 그대로 남아있는 사방의 벽들을 보면 호화스러운 생활과 화려함의 극치를 느낄 수 있다.
궁은 세부분으로 나뉘는데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졌던 공공빌딩과 왕좌가 있는 홀이 가운데 있고 홀 옆으로 하렘이 있다. 궁에는 대략 250개가 넘는 방과 43개의 홀이 있으며 각 방의 실내장식을 각각 다른 분위기로 꾸미는 화려함을 보인다. 탁트인 홀에 매달린 수정 샹들리에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받은 헌상품으로 무게는 4.5톤이며 750개의 촛불 램프가 켜져있다. 궁과 궁의 각방을 꾸미는데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궁은 오스만 제국의 약화가 가속되어 가는 시점에서 서구화를 지향하고 국력 쇄신을 도모할 목적으로 보스포러스 해변가에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해 초호화판으로 건립되었다.때문에 결과적으로 막대한 건축비는 왕궁 재정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오스만 제국을 멸망으로 초래하였다.
궁전내의 시계는 9시5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공화제가 확립된 후 초대 대통령인 아타투르크도 이곳을 관저로 사용하다가 1938년 11월 10일 집무중에 죽었기 때문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라서 몇 번이나 제지를 당하고 아예 촬영을 포기해 버렸다.
돌마바흐체 궁전 외부에 있는 카페는 수 많은 관광객들이 보스포러스 해협을 바라보면서 여유롭기 그지 없다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유람선을 타고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도시와 건축물들을 보며 즐긴다.
전차를 타고 이스탄불의 가장 번화가를 거닐며 쇼핑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는 야경투어는 내가 선호하는 관광 방법중의 하나다.
관광지만 스쳐지나가는 여행보다 그들속에서 함께 느껴보는 여행이 그 나라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이스탄불에서 만난 한글과 기념비와 내가 속한 경상북도와 익히 귀에 익은 존함은 참 반갑다.
단란한 이슬람 가족의 저녁나들이풍경. 2녀 1남의 소녀들은 참 으로 조신했고 막내 아들은 또랑또랑 했으며 아빠는 단호해 보였다. 엄마는 눈만 빼꼼한 복장인채 였는데 기념 사진 한장 찍자는 제안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