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
황여정
마음이 만들어 낸
기억은 늘 아름답다
투명한 얼음속으로
겨울잠에 든 물고기를 본다든가
자동차를 타고 달린다든가
입김이 얼어붙는
순간에 서 있다거나
하는 생각의 늪에서 걸어 나오는 일
을 기다리는 것은
호수 속의 작은 섬
알혼으로 가는 길 내내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의 마음처럼 설레었다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자동차너머
먼빛으로 보이는 물빛 그림자
그 곳에 왔다
그리고 만났다
처음 자동차 바퀴가
출렁, 빙판에
닿는 순간의 떨림을
보석처럼 꽉 잡아 마음속에 챙겼다
사방이 꽁꽁 얼어붙은 빙판을
자동차는 잘도 달린다
기억 속 찬란한 마음도
팡파르를 울리며 달린다
추울수록 더 깊이 손을 잡고
얼어붙는 바이칼의 겨울
한 마리 거북이처럼
얼음판을 기어다니며
말을 걸어 본다
오래 전 부터 보고 싶었다고
마음속에 담아둔 그리움이었다고
무슨 말을 할까 기다렸다고
이렇게 맑은 날
나를 받아줘서 고맙다고
쾌청한 하늘은
영하15도의 추위도 봄볕처럼
가볍다고
떠드는 소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처럼 맑았고
헐렁해진 마음은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기도처럼 깊어졌다
작별의 시간은 가까워지고
아쉬운 마음은 기약이 없는데
호수 저 밑바닥에서
그르렁 그르렁 바이칼의 얼음이
작별 인사를 보냈다
러시아의 푸른 눈빛으로
다시 만나자고
언제든 다시 와서
행복해져 돌아가라고
안녕히
부디 안녕하길 바란다고
2019.2.23.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