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 열차
황여정
기억속의 횡단 열차는
모든 낭만을 다 불러 모았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차창을 보며
설원을 달리는 시베리아횡단 열차에서
라라의 테마* 감미로운 선율과
지바고의 깊은 눈빛을 찾았다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달리는
열차바퀴의 진동은
마음보다 몸을 더 흔들어
두통을 일으키고
눈밭을 지키고 선 풀들의 흔적은
삶의 버팀으로 너무 아프다
기억은 얼마나 무지 한가
내가 불러 모은 기억들이 눈앞에서
하나하나 쓰러져 가는 것을 본다
지바고의 발자취처럼
차창에 매달려 한없이 따라오는
자작나무의 야윈 그림자
영하의 온도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자리 지킴은 천형처럼 슬프다
순백의 귀족이라는 이름이
눈밭에서 저리도 눈부시게 아프다
덜컹덜컹 흔들리며
엄마의 요람 속처럼 잠을 청한다
영하 30도의 추위는
역사마다 붉은 빛으로 겨울의 온도를
증명하듯 야광판에 빛나고
사람들은 그 밤중에도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이 있다
잠시 정차하는 역에서 내리니
머리카락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다 선채로 눈사람이 될 것같은
극한의 추위에 따뜻함의 기억이 새롭다
문풍지를 울리던 그 겨울의 구들목같은
온기, 열차안은 참 따뜻했다
역사를 벗어난 열차는 다시
덜컹덜컹 달리고 차창에 비치는
별빛이 초롱초롱하다
얼어붙은 하늘에 매달린
별들이 한사코 따라오는 밤
별이 잠들 때 까지
잠들지 못하고 아껴둔 말들을
꺼내어 본다
라라의 아름다운 기억도
최석**의 아픈 사랑도
기억의 창고에서 오래도록
별빛처럼 빛나기를
덜컹덜컹 요람처럼 평화롭기를
안녕, 시베리아여
2018.2.23.12:35
라라의 테마 : 닥터지바고의 주제 음악
최석 : 춘원 이광수의 소설 유정의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