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기억
황여정
시베리아 눈밭에
꼿꼿하게 말라있는 풀을 본다
지난 여름 푸른 풀이거나
예쁜 꽃이었을
기억을 안고
눈밭에 서 있다
한 생을 살고도
쓰러지지 않고
미이라처럼
생의 발자국을 지킨다
몸이 병들면
마음이 들어가서 살게 될
집을 잃는다
추상같은 정신을 가진 사람도
몸이 허물어지자
노숙자처럼 황폐해진
영혼을 보았다
눈밭의 저 풀은
어디에다 영혼을 묻어두고
저리도 꼿꼿한가
다시 봄이 오면
일어서는 초록의 노래
풀의 흔적이 눈밭에
가득하다
2019.2.23.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