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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여행

안톤 체호프 영지 3

by 매화연가 2017. 11. 10.

2017.10.22. 셋 째날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안톤 체호프의 영지가 있는 멜리호보로 간다.

모스크바 숙소에서 약 200km떨어진 멜리호보는 전용버스로 3시간정도 소요되는 곳이다.

모스크바 남쪽에 있는 시골 마을 멜리호보는 안톤 체호프가 1892년부터 1899년까지 거주하면서

희곡 <갈매기>< 바냐 아저씨>를 비로하여 수많은 단편 소설을 집필한 곳이다.

이곳 영지에서는 정원에 라일락과 벚꽃이 활짝 피어나는 5월에 국제연그페스티벌 '멜리호보의 봄'이 열린다.


호텔로비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단체사진


체호프의 영지 앞에 전시된 기념품 가게가 너무나 소박하다


입구에서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안톤 체호프의 동상



아담한 영지는 흔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과수원집의 풍경처럼 소박하지만 오래 된 나무들이 집 둘레의 품격을 높여준다고 할까?






나무에 매달린 사과도 땅에 떨어진 사과도 모두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맛볼 수 잇다



체호프의 일상이 담긴 생가 내부의 모습






동네 주민들께 의료 봉사를 하던 공간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1860년 1월 29일 러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농노 출신으로 돈을 모아 자유 시민이 된 사람이었다. 아버지 파벨 체호프는 작은 식료품점을 운영했는데,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어서 그를 자주 때리고 꾸짖었다고 한다.


체호프는 9세 때 타간로크 김나지움에 들어가 중등교육을 받았으며, 16세 때 아버지가 파산하면서 가족들은 모스크바로 이주했으나

그는 타간로크에 혼자 남아 가정교사 일을 하면서 학비를 충당하여 학교를 마쳤다.

그는 5남 2녀 중 3남이었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라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세 때 장학금을 받고 모스크바 의과대학에 진학했으며, 가족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간지나 신문에 콩트와 유머러스한 짧은 글, 단편,

만평 등을 기고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24세 때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자격증을 딴 후 치키노 지역에서 의사로 일하면서도 몇 년간 글쓰기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1890년, 체호프는 문학적으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고뇌하면서 사할린 유형지로 갔다. 육로로 마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거쳐 사할린을 여행하고,

해로로 홍콩, 싱가포르, 스리랑카를 거쳐 약 10개월 만에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이 여행에서 그는 사할린 유형지의 생활을 관찰, 기록하고,

인간의 실존과 개성을 억압하는 사회악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했다. 그 결과 〈도적들>〈사할린 섬>〈6호실〉〈결투〉 등이 탄생한다

1892년, 모스크바 근교의 멜리호보에 영지를 구입해 정착한 체호프는 그곳에서 농민들을 위한 무상 의료를 펼치는 한편, 지역 학교 설립을 주도하고

도서관을 확충하는 등 농민들의 교육 문제에 열성을 쏟았다. 또한 1901년 〈갈매기〉에 출연했던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와 결혼하기도 한다.

1898년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휴양지인 얄타로 이주했고,  1900년에는 러시아 학술원 명예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희곡 〈세 자매〉로 그리보예도프 상을 수상했다.

1904년 건강이 악화되어 아내 크니페르와 함께 독일의 바덴바일러로 떠났으나 그해 7월 15일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조국으로 돌아와 모스크바 노보제비치 수도원 묘지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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