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23.7:40 출발
네 번째 들린 곳
송천예배당
이 건물은 송천예배당의 본당으로 미국 선교부의 지원을 받아 건립하였다.
1953년 한국전쟁 직후 건축된 박공슬레이트 지붕의 목조건축물이다.
해방이후, 건축된 교회건축물로는 드물게 남녀 신자를 구분한 교회형식이 건축계획에 반영되었다.
동서로 긴 장방형의 평면에 출입구 위에는 박공지붕의 포치(porch)를 돌출시켜 정면성을 강조하였으며,
출입구 지붕 아래에 목구조를 응용하여 십자가 형태를 표현해 종교 시설임을 나타냈다.
송천교회는 한옥예배당이 아니고 몰타르(시멘트)와 목조 혼합형 예배당이란 특징을 갖고 있다.
교회건축의 토착화 과정과 광복이후 목구조 건축기법을 간직하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있다.
(재)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측유지재단
다섯 번째 들린 곳
나옹왕사 반송정
나옹왕사 반송정(盤松亭)
나옹화상은 20살에 친구가 죽자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화두를 품고 집을 떠난다.
그는 집을 떠나올 때 반송 소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나왔다는데 정자가 선 자리에 지팡이를 꽂고 어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어머니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저는 살아 있을 것이고 죽으면 저는 죽은 것으로 아십시오."
나무는 잘 자라 마을의 수호신이 됐다. 높이가 수십 척이 됐고 너비가 몇아름이나 큰 나무로 자랐다고 한다.
나옹이 큰 스님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반송정이라고 했다. 마을 전체를 반송정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6·25 전쟁을 겪은 뒤 1965년 고사하고 말았다. 그 자리에 세운 정자가 지금의 반송정이다.
나옹화상의 이름은 혜근이다. 성은 아(牙)씨. 선관서령 벼슬을 지낸 아서구의 아들로 영덕군 창수면 불암골에서 태어났다.
불암골은 까치소라고도 불리는데 지명과 관련해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집이 가난해 세금을 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관리가 나옹의 어머니를 묶어서 관가가 있는 영해로 데려오는데 못가에서 해산을 하게 됐다.
관리는 사정을 봐주지 않고 낳은 아이를 버려두고 영해부로 데려왔다. 부사가 피묻은 치마를 보고 놀라 즉시 풀어주었다.
어머니가 아이 낳은 자리로 돌아와 보니 까마귀와 까치가 날개를 펼쳐 덮어 아이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나옹이다. 그런 연유로 그 자리를 까치소라 하였다.
나옹은 20살에 출가한 뒤 회암사에서 수행을 거듭하다 원나라에 유학을 가 지공스님의 문하가 됐다.
고국에 돌아온 뒤 공민왕의 신임을 받아 왕사가 됐다. 송광사 신광사에 주석하며 선풍을 크게 일으켰고 양주 회암사에서 중창불사를 일으키는 등
불법을 증흥하는데 힘을 쏟다가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그는 어려운 불교를 대중화 하기 위해 300수의 게송을 남겼는데 오늘날 우리 가슴을 울리는
명시 '청산은 나를 보고'도 그 중 하나다.
여섯 번째 들린 곳
영덕 화수루 일곽
화수루는 17세기경에 초건되어 이후 중건된 중층의 누각 건물로서 누 대청이 강당을 겸하는 유형의 이 지역의 대표적 누 재실 건축이며,
전사청인 몸채와 함께 공간구성과 구조 양식 등의 건축적 가치가 뛰어나다.
당초에는 경북영덕 유형문화재 화수루(제82호)로 지정(1975.12.30)되었으나 신청(2007. 4.12)을 받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60호로 지정(2009. 4.28)되었다
조선 단종(재위 1452∼1455)의 외숙부인 권자신이 세조(재위 1455∼1468)에게 화를 당하고
그 아들 권책이 유배되어 여생을 보낸 곳으로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화수루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의 누마루 집으로 양쪽 1칸씩은 방으로 꾸몄고 가운데 3칸만이 누마루로 되어있다.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소박한 꾸밈새로 고건축물의 중후함이 엿보인다.
까치구멍집
집의 가운데에 마루를 두는 영동형 양통집으로, 언제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양통집은 한 채를 2줄로 만든 겹집이며, 주로 태백산맥의 동쪽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는 방이 한 줄로 배열되는 태백산맥 서쪽의 외통집과 대조를 이루는 형태이다. 앞면 3칸 반·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초가이며 까치구멍을 내었다. 까치구멍은 부엌 위로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붕에 구멍을 내는 것으로 주로 양통집에만 나타난다. 부엌에는 외양간을 들였으며, 부뚜막 사이 좁은 벽에는 조명과 난방을 겸한 코쿨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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