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낙관
김장호
밤샘 야근을 끝내고 난곡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낙엽을 털어내며 새벽바람이 일어나고
버스는 봉천고개를 넘어온다
신문 배달 나간 둘째는 옷을 든든히 입었는지…
텅 빈 버스 창가에 부르르 몸을 떨며
엉덩이를 내려 놓는다
방금 누가 앉았다 내렸을까, 연탄 크기만한
흔적이 살아있다
아직 미지근한 온기가 미소처럼 남아 있다
누구일까, 이 차가운 의자를 데운 이는
크기로 보아 술집 여인의 엉덩인가
놀음판에 개평도 얻지 못한 사내의 엉덩인가
아니다, 새벽 장 가는 아지매의 엉덩일 게다
새벽 공사판 나가는 인부의 엉덩일 게다
세상살이 흔들리며 데웠으리라
삶이란 세상에 따스한 흔적 남기는 것
나 역시 그대에게 줄 미소 하나 만든다
새벽에 찍는 하루의 낙관
시집 『나는 을乙이다』(한국문연,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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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곡은 지금은 아파트로 즐비하지만 산동네로 유명하였던 곳이다
체신 공무원, 출판사 영업사원, 섬유회사 영웝사원을 하다가
광고기획사를 운영한 시인은 안타깝게도 외환 위기의 고개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아픈 이력과 늦은 나이로 등단해선지 시인은
평범한 사람들이 노력하여 자립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사랑이 묻어 있는 시 한 편
시인은 화려한 수사법 대신
따스한 은유와 알레고리, 상징 등을 많이 사용한다
많은 사회적 약자인 을乙의 소박한 바람들을 시로 노래한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눈길이 진솔해서 시의 울림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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