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는 일이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ㅡ출처 :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
애절한 연시입니다.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그 초조함이, 간절함이 손에 뚝뚝 떨어집니다. 모든 사물이 다 ‘너’인 것 같은데 끝내 가슴을 에게 하는 ‘너’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도 갑니다. ‘너’는 먼 데서 오랜 세월을 다하여 천천히 오고 있으므로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너’에게로 갑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너’를 빨리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능동태로 구현되므로 그 적극성을 보면 빨리 ‘너’에게 닿을 것 같습니다. 이 시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1980년대의 무질서와 혼돈이 묶어놓은 민주주의입니다. 오지 않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토록 애타게 기다린 것이었습니다.
ㅡ강현덕(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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