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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내가 좋아하는 시

묵언/이시환의 자작시 해설

by 매화연가 2013. 5. 8.

[자작시 해설③]

-「묵언·1」




묵언・1



바람도

그곳으로부터 불어오고


강물도

그곳으로부터 흘러내려온다.



시 「묵언1」전문이다.

이 작품은 전체 2연 4행이지만 단 한 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시제詩題를 포함하여 모두 5행인 셈인데 이를 자연스럽게 읽고나면, ①묵언 ②바람 ③강물이라는 시어詩語가 중요하게 사용되었다는 점과, 혹시라도 그들에게 숨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지시하는 대상으로서 ‘곳’이 어디인지가 사뭇 궁금해질 것이다. 이런 의구심들이 이 짧은 문장을 한 번 더 읽게 한다.


‘묵언黙言’이라 함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상태’라는 점에서 겉으로는 ‘침묵’과 다를 바 없지만 속으로는 어떤 의미를 이미 내장하고 있어도 입을 열어서 발음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표현되지 않지만 이미 성립된 의미를 지닌 상태의 침묵이 묵언인  셈이다.  바로 이 ‘말하지 않는 말’이 곧 묵언인데 그 묵언이 작품의 중요한 소재素材 곧 제재製材가 되었으며, 그에 대한 본질이라고 할까, 심상心想의 정수精髓를 ‘바람’과 ‘강물’이라는 두 개의 소재를 끌어들여서 표현해 놓고 있다. 곧, “바람도 / 그곳으로부터 불어오고 // 강물도 / 그곳으로부터 흘러내려온다.”는 문장文章 하나로 된 시 전문全文이 그것이다. 이 전문은 두 개의 단문[單文(①바람도 그곳으로부터 불어온다. ②강물도 그곳으로부터 흘러내려온다.)]이 합쳐진 중문重文 이지만 매우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그 간단명료한 전문과 시제 사이에서는 두 가지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그 하나는 ‘바람이 그곳으로부터 불어오고, 강물이 그곳으로부터 흘러내려온다’는 화자의 판단이 묵언의 본질을 밝히는 묵언의 개념으로서 속뜻인지, 아니면 화자의 묵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다른 하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시발점과 강물이 흘러내려오는 발원지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그’라는 지시대명사가 가리키는 곳이 특정 지역의 어떤 지점인지, 아니면 시제인 ‘묵언’이라는 것인지 모호하여 이중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두 가지의 서로 연관된 궁금증이 문장 하나로 짜이어진 이 짧은 시를 한 번 더 읽게 하고, 그 의미를 더욱 깊게 한다.


궁금증부터 풀어 말하자면, ‘바람도 불어오고, 강물도 흘러내려오는’ 곳인 바람의 시발점과 강물의 발원지가 그 ‘어떤 곳’이 아니라 바로 ‘묵언’이다. 따라서 “바람도 / 그곳으로부터 불어오고 // 강물도 / 그곳으로부터 흘러내려온다.” 는 시 전문은 화자의 묵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 아니라 묵언의 본질을 드러내 주고 있는 비유적인 표현인 것이다.


다만, ‘그곳’이 가리키는 곳이 어떤 지리적 공간이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묵언’이라는 형태가 없는 추상명사가 놓였다는 점이 다소 생소할 뿐이다. 아무렴, 시인에게 바람과 강물의 발원지 따위가 궁금하겠는가? 하긴, 바람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사람들이 모른다는 점에 착안하여 예수는 ‘성령으로 난 사람’을 그 바람에 빗대어 말한 바 있고(요한복음 3:8), 부처는 어떠한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의 속성에 착안하여 도를 구하는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그 바람에 빗대어 말한 바 있긴 하다.


어쨌든, “묵언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무엇이고, 묵언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강물’은 또 무엇인가?”새로이 성립되는 이 질문에 답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다! 바람과 강물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현상들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 많고 많은 현상들을 대신해서 뽑혀 나왔을 뿐이다. 따라서 묵언은 현상을 낳는, 현상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현상이 묵언 속에 있으며, 그것들이 그 묵언으로부터 나온다는 뜻이다. 바람과 강물은 그 모든 현상들을 대표할 뿐이다.


묵언! 뜻은 내장되어 있지만 입을 열어서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침묵이다. 다만, 타자他者가 대신해서 그 묵언의 의중意中을 읽을 뿐이다. 그러한 묵언으로 치면, 조물주의 묵언이 최고이며, 온갖 현상들을 낳는 원천源泉의 묵언이 최고이다. 바람이 불고 강물이 흐르는 현상도 다 이유가 있듯이, 꽃이 피고 지는 데에도 다 길이 있다. 그 이유와 그 길은 현상을 낳는 원리가 되겠지만 그 원리를 풀어내놓는 ‘원천’이야말로 묵언 그 자체이다. 묵언은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며, 모든 말을 가능하게 하고, 모든 현상들을 낳게 하고, 모든 것을 이어주는 끈으로 원천이자 바탕인 것이다. 바로 그 묵언의 정체를 드러내고자 여전히 궁금한, 내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의 시발점과 내 발밑 강물의 발원지로 빗대어 표현했을 뿐이다.


‘묵언’이라는 단어가 놓이는 자리에 ‘설봉雪峰’ 혹은 ‘신’ 혹은 ‘진리眞理’라는 단어들을 갖다 놓아도 무리 없이 피가 통하고 뜻이 통하리라 본다. 요설饒舌을 배제한 담백한 말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적절한 예라 생각한다.


-2013. 05.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