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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내가 좋아하는 시

명시

by 매화연가 2011. 10. 18.

 

 

 

 

명시

 

배한봉

 

꽃시장 상점마다 백합 수선화 아네모네… 둥근 알들이

한 자루씩 붓을 힘차게 뽑아 들고 있다

봄에 대한 명시를 쓰려는 것이다

모필(毛筆)의 반쯤 열린 분홍 입 속에서

은밀하게 성숙되는 꽃의 시

한 번만 읽어도 감동 잊히지 않는

새 어법의 향긋한 시행들이

겨울 새벽의 미농지 위에 노랗게 또는 발갛게

처음이라 더 달큰한 꽃 몸살로 기록되고 있다.

 

       한 자루 붓을 뽑아낸 알의 힘은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다

기다림이라는 붓 끝에서 개화하는

신생의 목록은 아기 심장처럼 두근거리고 있다

비루한 시간들을 견디게 한

꽃이라는 불이 켜지고

죽음보다 힘센 절망의 그림자를 덜어내는

그 불빛만큼 당신을 기다려온 사람도 환하게 켜진다.

 

나는 지금 꽃의 시가

그리움의 세포와 세포 사이에

맑은 종소리로 채워지는 소리를 듣는다

이 종소리를 기억하는 한

겨울을 건너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꽃의 문장은 꽃샘의 질투 때문에 더 아름답고

우리 걸어가야 할 길은

그 문장으로 인해 오래 따뜻하고 환하다.

 

 

 

 

-『시와 표현』(2011,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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