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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여행

태백 눈꽃 열차

by 매화연가 2011. 1. 17.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아침(2011.1.15) 대구 기온이 영하13도  라고 하는데 6시30분에 태백 눈꽃 여행을 떠났다.

총무가  6시20분까지 모여야 된다고 했더니 모두 얌전하게 시간 늦지 않고  버스에 탑승해 있었다.

이렇게 추운데도 여행자 클럽의 버스는 빈자리 없이 만석으로 출발....

 

 처음 도착한 곳은 정암사

정암사에서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산꼭대기에 있는 수마노석탑

정말이지 길은 미끄럽고 뺨은 얼어서 터질것 같은 매서운 날씨였다. 옷을 많이 입어서 몸은 춥지 않지만 외부에 노출된 뺨은 금방 동상에 걸릴 것 같았고 몸이 뒤뚱거려 엉금엉금 설설 더듬더듬 걸었다.

 

정암사수마노탑 (고려 탑)  [淨巖寺水瑪瑙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있는 고려시대 7층모전석탑.
보물 제410호. 높이 900cm. 정암사 뒤편 천의봉(天衣峰) 중턱에 축대를 쌓아 마련한 대지 위에 서 있다. 이 절은 636년(신라 선덕왕 5) 자장법사(慈藏法師)가 당나라에서 석가세존의 신보(神寶)를 얻어 귀국한 뒤 세운 절로 이 탑에 세존의 사리를 봉안했다고 하여 현재 법당에 불상이 없다. 화강암제로 된 6단의 기단 위에 모전석재(模塼石材)로 2단을 쌓아 7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받치고 있다. 모전석재는 회록색의 수성암질(水成岩質) 석회암인데, 길이 30~40cm, 두께 5~7cm로 정교하게 가공하여 전(塼)처럼 보인다. 1층은 폭 178cm, 높이 103cm로 크며 남면 중앙에 감형(龕形)의 방광(方U)을 만들고 가운데 1매의 판석을 끼웠는데 중심에 철제 문고리를 달아 문비(門扉)임을 나타내고 있다. 옥신석은 전체적으로 체감비율이 낮아 높고 불안정해 보인다. 옥개석은 비교적 넓은 편으로 추녀 밑에 약간 반전(反轉)이 있으며, 층급받침은 1~7층 1단씩 줄어 1층은 7단이고, 7층은 1단으로 되어 있다. 낙수면의 층단도 각 층마다 1단씩 줄어 1층은 9단이고, 7층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 끝에는 풍령(風鈴)이 달려 있다. 상륜부는 화강암 석재로 된 노반(露盤) 위에 청동제 상륜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꽃 모양으로 투각된 오륜(五輪) 위에 복발(覆鉢)·보륜(寶輪)·병형(甁形)이 있고, 병형의 목에서 4개의 철쇄(鐵鎖)가 나와 4층 옥개까지 늘어져 있다. 맨 위에는 4각으로 돌출된 수연형(水煙形)이 있다. 1972년 해체·수리할 때 5개의 탑지석과 기단부의 적심부에서 청동합·은제외합·금제외합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1770(영조 46), 1778(정조 2), 1874년(고종 11)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출처: 브리태니커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정암사 정경

 

 

 

적멸보궁 입구에 1300년의 세월을 지키고 선 자장율사의 주장자

 

 

 

 

설경을 만끽하면서 영월로 떠나기 위한 기차를 타는 민둥산역에서의 기념촬영

추워도 마음은 따뜻하고 훈훈해서 입가에 미소 만발

 

차창을 스치는 설경, 가이드는 나무에 달린 눈꽃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만 아직 산과 들에는 눈이 하얗다

 

역(寧越驛) 현판을  한자로 걸어둔 건 처음보는것 같아서.....

선돌

선돌은 영월읍 방절리 서강안에 절벽을 이룬 곳에 위치해 있는데 높이 70m 정도의 바위가 마치 큰칼로 절벽을 쪼개내리다 그친듯한 형상을 이룬 입석을 말한다. 이 입석의 바로 앞에 우뚝선 기암은 신비스러울뿐만 아니라 절벽과 입석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강물은 마치 금강산의 일부를 보는 듯한 절경을 이루는데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 선돌을 구경한다. 서강(西江)의 푸른물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한국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하여 일명 신선암이라 고도 한다. 선돌 아래 깊은 소(沼)에는 자라바위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선돌 아래동네 남애 마을에 장수가 태어나 적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이곳에서 투신 자라바위가 되었다고 하며 선돌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한가지씩 꼭 이루어진다는 설화가 전하여 오고 있다.

청령포 가는 길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다음해인 144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중추부사 노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
지금 청령포에는 단종 유배시에 세운 금표비(禁標碑)와 영조때 세운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가 서있어 옛일을 전하고 있다. 또한 망향탑, 노산대, 관음송이 있다.

 

 

강이 얼지 않았을때는 나룻배를 타고 가는데 지금은 강이 꽁꽁얼어 얼음위를 걸어서 건너갔다 .

어렸을적에 동네 강에서 얼음을 지치던 때가 언제 인데 그 옛날 일을 다시 해 보나?

 

 

 

관음송

관음송은 청령포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으며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종 遺址碑閣(유지비각)서편에서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는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리어 왔다.

소나무 크기는 높이 30m, 가슴높이의 둘레 5m로 지상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랐다. 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3.3m, 남북 20m로 가지를 펼치고 있다. 수령은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80년으로 하여 계산된 것이다.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으로 서강변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이 관광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0여년전 사진작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한반도의 분위기를 더욱 잘 표현하기 위해 전망대 주변에 무궁화를 심었으나 지금은 겨울이라 꽃을 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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