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5.오후 2시 출발
그야말로 만추다. 아파트의 나무들도 우수수 낙엽이 지고 가로수도 한결 짙은 빛으로 물이 들어
눈길가는 곳마다 며칠 남지 않은 가을에 가슴이 서늘하다. 비라도 한번 후두둑 지나가면
나무들은 모두 잎을 떨구고 앙상한 빈가지로 남을 이 계절을 놓치고 싶지 않다.
가자, 어디던 떠나자. 나무가 물든 골짜기 어디던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다.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로 소문이 난 만휴정의 가을 서정이 궁금했다. 거리도 멀지 않아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이미 단풍철이 막바지라 고엽으로 말라버린 나무들 사이사이로 조금씩 남아있는 단풍들이 더욱 정겹다.
요 며칠동안 가을햇살이 풍요롭다. 축복이다.
만휴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말년에 귀거래하여 지은 정자다. 김계행은 17세에 진사가 되고 50세 되던 해 식년시에 급제하여 늦은 나이에 관직에 나아갔다. 연산군 때 대사간에 올랐으나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기 위한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내놓고 고향인 안동으로 낙향했다.
처음에는 풍산사제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어 ‘보백당(寶白堂)’이라 칭하고 학생들을 모아 가르쳤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그를 보백 선생이라 불렀다. 보백이란 재물에 대한 욕심 없이 곧고 깨끗함을 뜻하는 ‘청백(淸白)’을 보물로 삼는다는 의미다. 1501년 고희를 넘긴 보백 선생 김계행은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일찍이 마련한 지금의 ‘보백당 종택’에 정착하고, 산속 계곡의 폭포 위에 만휴정을 지어 산수를 즐겼다.
만휴정(晩休亭)이란 ‘늦은 나이에 쉰다’는 뜻으로 김계행이 말년에 얻은 정자의 의미를 잘 나타내고 있는 이름이다. 만휴정은 김계행의 장인 남상치(南尙致)가 지어 처음에는 쌍청헌(雙淸軒)이라는 당호로 불렀다고 한다. 김계행이 만년의 늦은 나이에 이곳을 은거생활의 장소로 즐겨 사용한 것에서 이름이 만휴정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김계행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향하고자 했던 삶의 전형을 보여준 올곧고 강직한 선비였다.
만휴정은 인공적인 원림 요소가 극히 절제된 구성을 보여준다. 이곳을 짓기 위해 축조한 석축과 담장, 소박한 정자,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원림의 전부다. 본래 우리나라의 원림은 인공적인 일본의 정원이나 과장된 중국 민가정원과는 달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자연 요소를 모두 소재로 차용해서 정원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만휴정 원림은 이러한 한국 고유의 소박한 원림 형태를 잘 보여주는 고정원이다.
만휴정에서 귀거래의 늦은 삶을 여유롭게 보낸 김계행은 천수라 할 수 있는 87세까지 살았다. 그는 자신의 처소인 보백당에서 임종하면서 “대대로 청백한 삶을 살고 항상 돈독한 우애와 지극한 효심을 갖도록 하라. 그리고 절대 세상의 헛된 명예를 얻으려 하지 마라”는 청백리의 삶을 후손에게 유지로 남겼다.
출처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