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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여행

문경 봉암사 보물/지증대사 탑, 지증대사 탑비,삼층석탑

by 매화연가 2018. 8. 27.

2018.8.26.6:40. 관오사 출발


봉암사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로 879년(헌강왕 5)에 지증대사인 지선이 창건했다. 935년(태조 18)에 정진대사 긍양이 중창하고, 1431년(세종 13)에는 기화가 중수했다. 1674년(현종 15)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신화(信和)스님이 재건했다. 1915년 세욱(世旭)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 당우로는 극락전과 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보물 제137호)·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제315호)·문경 봉암사 3층석탑(보물 제169호)·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보물 제171호)·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보물 제172호) 등이 있으며 이 절의 서북쪽 계곡에 있는 거대한 암벽에는 높이 600cm의 봉암사마애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이 새겨져 있다.


선원의 역사  

19826월 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여 성역화 의지를 표명하였다. 19827월 문경군에서는 사찰 경내지를 확정 고시하였다 그래서 희양산 봉암사 지역은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이어 19846월 제 13차 비상종단 상임위원회에서는 선풍 진작과 종단 발전을 위해 봉암사를 종립선원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1994년 범룡스님이 조실로 추대되어 2년여간 납자를 제접하여오다, 2000년 하안거 해제에 진제스님을 조실로 모셨으며 그후 2001년 하안거 결제에 서암스님을 다시 조실로추대하여 대중 스님들을 지도 하시다가 2003329일 날 열반에 드셨다.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聞慶 鳳巖寺 智證大師塔)

신라 후기의 고승 지증대사의 사리탑. 경북 문경시 봉암사에 있으며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지증대사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봉암사 대웅전 왼쪽에 서 있다. 지증대사(824∼882)는 이 절을 창건한 승려로, 17세에 승려가 되어

헌강왕 7년(881)에 왕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봉암사로 돌아와 이듬해인 882년에 입적하였다. 왕은 ‘지증’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 이름을‘적조’라 하도록 하였다.

이 탑은 사리를 넣어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기단부(基壇部)를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다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국보 제315호. 높이 2.73m, 너비 l.64m, 두께 23cm. 재료는 편마암이다. 2010년 1월 4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을 창시한 지증대사(智證大師)의 탑비이다. 비석의 크기, 조각수법 등에서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이 엿보인다.

이 비는 당대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비문을 지은 것으로 그가 비문을 지은 대숭복사비,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국보 제47호)와 함께 사산비명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비문에 따르면 882년(헌강왕 8) 지증이 입적하자 왕이 시호를 내리고 적조라는 탑호와 함께 비명을 최치원에게 짓게 했다. 비문은 893년(진성여왕 7)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며, 탑은 924년(경애왕 1)에 건립되었다.

이 비에는 탑비를 세운 연대가 밝혀져 있을 뿐 아니라, 비문을 쓰고 각자한 사람이 분황사의 승려 혜강임이 밝혀져 있어서 한국 서예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이 비문에는 신라 하대의 인명, 지명, 관명, 사찰명, 제도, 풍속 등의 정보가 담겨 있어 신라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백제의 소도에 대한 기록도 있는데, 이는 소도에 대한 국내 유일의 기록이다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聞慶 鳳巖寺 三層石塔)

경상북도 문경시 봉암사 사찰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삼층 석탑.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69호로 지정


보물 제169호. 높이 631cm. 이형 석탑으로 단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가 있으며, 상륜부가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드문 예이다. 넓은 지대석 위에 있는 1단 굄이 기단을 받치고 있는데 기단의 각 면에는 탱주와 우주가 새겨져 있고, 갑석 밑에는 부연이, 윗면에는 호형과 각형의 2단 굄이 있다.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석은 각각 다른 돌로 구성되었으며 옥신에는 각 층마다 우주를 새겼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1, 2층이 5단이고, 3층은 1단이 줄어든 4단이며 처마 끝부분은 약간 위로 올라간 모습이다. 상륜부에는 2단을 나타낸 노반 위에 반구형의 복발·앙화·보륜·보개·수연·용차·보주가 차례로 놓여 있으며 철간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석탑은 879년 지증대사에 의해 봉암사가 개산될 때 건립된 것이며,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아지고 기단이 단층인 점, 옥개석의 받침이 줄어든 점 등에서 통일신라 말기의 석탑 형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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