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월시인이 단번에 읽고 감동받은 현대시]김복수 시-호박
호박
김복수
한때는 사는 게 답답하여
우듬지에 올라 세상 구경하려 했다
그러나 곁에 있던 토담이 가슴 내어주었다
묵묵히 제 갈 길 지켜온 텃밭이
고추며 상추의 파란 모습 보여주었다
나는 이웃이란 것을 보았다
토담의 어깨에 팔을 얹고 너른 잎 부지런히 피웠다
벌 나비가 찾아 왔다 반가워 가슴에 품었다
그제야 호박이 되었다
호박이 되고 나니 둥글게 보였다
내가 둥그니 하늘도 둥글고
해도 둥글고 달도 둥글었다
칠십년 살아온 호박은
별이 둥글지 않아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냥 잊고 살았다
바람도 덤으로 불라 하였다
사는 것이
왜? 라고 하기보다는
네! 라는 말이 따뜻했다
-호박이 되고나서의 세상의 조화를 체득한 시인의 깨달음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내가 둥그니 하늘도 둥글고/ 해도 둥글고 달도 둥글었다'는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평범한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평범한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오지 않은 시인의 육화된 편력을 보는 듯하다. 평범해 보이는 듯한 소재와 문장들이 유려한 구사로 한층 시의 맛을 돋구는 재간이 놀랍다. (글:서지월)
출처 : 한민족사랑문화인협회작가회의 | 글쓴이 : 미인송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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