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그림이 되거라
황여정
박물관대학에서
불교그림 공부를 하는 시간
아주 작고 퇴색해서 가물가물한 선을
살얼음판처럼 돋보기로 건너간다
세세하게 그려진 봉황새와
주위에 둘러선 부처의 손 모양과 자태
선의 굵기와 색의 재료와 색깔들이
건져 올린 아침처럼 마음에 환하다
삭아서 문드러진 선하나라도
행여 바람에 지워질까 마음을 졸이는 지극 앞에
내 삶의 한 모퉁이 저 그림 속에 처 박고 싶다
몇 백년된 부처의 옷자락이 되거나
눈썹 없는 모나리자의 초상이 되거나
고흐의 잘려나간 귀가 되거라
먼 훗날 어느 돋보기 속에
여린 잎새며 푸른 바위 같은 침묵이며
생명의 진액까지 소진하는 붉은 단풍처럼 살았다고
누군가 말해 주는 한 폭의 그림
붓 끝속에 머무는
어느 한 생애처럼
사랑받고 싶거든 한폭의 그림이 되거라
2013.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