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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시

한 폭의 그림이 되거라

by 매화연가 2016. 9. 2.




한 폭의 그림이 되거라

 

황여정

 

박물관대학에서

불교그림 공부를 하는 시간

아주 작고 퇴색해서 가물가물한 선을

살얼음판처럼 돋보기로 건너간다

 

세세하게 그려진 봉황새와

주위에 둘러선 부처의 손 모양과 자태

선의 굵기와 색의 재료와 색깔들이

건져 올린 아침처럼 마음에 환하다

 

삭아서 문드러진 선하나라도

행여 바람에 지워질까 마음을 졸이는 지극 앞

내 삶의 한 모퉁이 저 그림 속에 처 박고 싶다

몇 백년된 부처의 옷자락이 되거나

눈썹 없는 모나리자의 초상이 되거나

고흐의 잘려나간 귀가 되거라

 

먼 훗날 어느 돋보기 속에

여린 잎새며 푸른 바위 같은 침묵이며

생명의 진액까지 소진하는 붉은 단풍처럼 살았다고

누군가 말해 주는 한 폭의 그림

 

붓 끝속에 머무는

어느 한 생애처럼

 

사랑받고 싶거든 한폭의 그림이 되거라

 

201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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