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지지 안해도 노무현 묘역에 가볼 이유
삶을 담은 죽음의 공간-우리 시대 최대의 공공예술이 된 무덤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 달라.”
유언은 아주 간단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2009년 5월23일, 전 대통령 노무현은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고, 당연히 그의 죽음은 수많은 논란과 파장을 낳았다. 이 비극적인 사건이 영향을 미친 분야에는 뜻밖에도 건축도 포함되어 있다. 아주 특별한 죽음만큼이나 특별한 건축, 그동안 없었던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란 새로운 건축물이 한국 건축사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관심은 그의 무덤에 쏠렸다. 그를 어디에 안치할 것인지는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었다. 전직 대통령이었으니 당당히 국립현충원에 묻혀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다. 그러나 유족들은 고민 끝에 봉하마을 대통령 사저 뒷산에 그를 안치하기로 정했다. 그가 떠난 지 6일째, 장례식 바로 전날 쟁쟁한 문화계 인사들이 급박하게 모인 ‘작은 비석 위원회’는 그의 무덤을 만드는 작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떠난 대통령의 묘역을 만들 건축가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살았던 봉하마을 사저를 설계한 이는 정기용 교수였다. 그 누구 못잖게 큰 충격을 받은 정 교수가 차마 묘역까지 설계할 수는 없었다. 위원회에 참여한 또 다른 건축가인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자연스럽게 묘역을 설계하게 됐다.
건축가는 이 독특했던 전직 대통령을 다시 돌아봤다. 그가 생각한 노무현은 “자발적 추방인이며, 그래서 시대의 지식인”이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정의한 지식인 그대로 “스스로 경계 밖으로 추방하는” 사람, 그게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생 정치하면서 만들어간 자신의 길이었다. 노무현이란 독특하고 특별한 인물의 무덤은 자신을 스스로 추방한 지식인의 무덤이어야 한다고 건축가는 마음을 정했다.
그 이튿날, 건축가는 무덤이 들어설 봉하마을로 떠났다. 마을 풍경은 범상치 않았다. 넓은 들판 가운데 우뚝 산이 솟아있었고, 부엉이 바위와 사자 바위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다. 마을을 돌아본 위원회는 뒷산은 비록 그가 바랐던 곳이지만 묘역을 마련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망자를 추모하려 몰려들 수많은 사람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위원회는 유가족을 설득했고, 그래서 뒷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사저 옆에서 약간 떨어진 평지를 묘역 자리로 정했다. 건축가가 고른 그 땅은 마을과 산 사이에 물길이 흘러가며 묘하게도 삼각형 모양을 만드는 자리였다. 평지와 산이 만나는 그곳이 죽은 자와 산 자가, 떠난 자와 기리는 자가 만나게 될 곳으로 제격이라고 건축가는 생각했다.
건축가는 우선 세계의 유명한 무덤과 묘지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세계 건축사에서 손꼽는 묘지와 무덤들인 이탈리아의 산 카탈도 공동묘지, 스페인의 이괄라다 납골 묘원, 스위스 쿠르 공동묘지 등등에서 강력하게 마음을 끌어당긴 곳은 두 곳이었다. 맨 먼저 건축가가 떠올린 곳은 스웨덴의 우드랜드 공동묘지였다. 스웨덴 건축가 시구르트 레베렌츠가 남긴 이 공동묘지는 아름답고 장중한 인공 언덕이 방문객으로 하여금 절로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건축사 걸작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나머지 한 곳은 간디의 묘였다. 간디의 묘 ‘라즈 가트’는 간디의 주검이 묻힌 곳이 아니라 그를 기념하는 곳이다. 이 위대한 인물이 남긴 영향과 감동에 견주면 그의 묘역은 아주 작다. 최소한의 조경만을 남긴 넓지 않은 공간 가운데 검은 돌만으로 그를 기릴 뿐이다.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우드랜드 묘지, 그리고 크지 않기에 오히려 더욱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간디의 묘. 이 두 묘가 아주 작은 비석이 들어설 묘역의 모델이 됐다.
본격적인 고민은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지지자들에게 노무현의 묘는 성역처럼 다가갈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를 우상화하는 곳이어서는 안됐다. 노무현다운 무덤, 그의 진정성을 담아내는 무덤은 그러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승효상이 찾은 해법은 한국에서 가장 신성하고 장엄한 죽음의 공간인 종묘에서 나왔다. 한국 건축 최고의 걸작이라 불리는 종묘의 아름다움은 길게 뻗은 정전 건물의 압도적인 모습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 건물이 진정 아름다운 이유는 그 앞에 박석을 깐 넓은 월대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비워놓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곳, 그게 월대의 아름다움이자 종묘의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해석한 건축가는 월대가 보여주는 “비물질의 아름다움”을 디자인의 키워드로 골랐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노무현의 묘역은 그의 1주기 날,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문을 열었다. 묘역은 삼각형의 가장 뾰족한 꼭짓점에서 시작된다. 작은 점에서 시작해 점점 넓어지는 묘역은 종묘 월대처럼 비정형의 투박한 박석을 깐 광장이다. 물길이 가로지르는 이 광장을 따라 걸어가면 맨 마지막 부분에 ‘대통령 노무현’이란 여섯 글자만 새긴 고인돌 모양의 너럭바위가 나온다. 높은 기념탑도, 역동적인 조각도 없다.
이 묘역은 승효상 건축가의 작품인 동시에 여러 동시대 문화인들의 공동 작품이다. 유분함은 안규철 교수가 디자인해 도예가 박영숙씨의 작품 도자기를 넣었다. 조경은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정영선씨가 했고, 너럭바위에 새긴 ‘대통령 노무현’은 지관 스님의 글씨이며 바위를 받치는 강판에 새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글씨다.
그러나 진짜 이 묘역을 완성한 예술가는 이들 문화인들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이다. 관람객들은 이 삼각형 광장에 올라서는 순간, 예상 못한 무늬를 만나게 된다.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하고픈 말들을 새긴 돌 벽돌들이 박석 중간에 골목길 모양으로 뻗어나간다.
건축가가 전체 디자인을 완성한 뒤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묘역 표면의 “표정”이었다고 한다. 건축가는 임옥상 화백에게 아이디어를 부탁했고, 임 화백은 마을 골목길이 뻗어나가는 모양을 그려왔다. “세상을 떠난 대통령이 외롭지 않게,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바라는 생각”에서 나온 그림이었다. 임옥상 화백이 그린 그 골목길 모양은 정확하게 시민 1만5000명이 저마다 쓴 글귀를 새긴 벽돌들로 완성됐다. 국민 모금으로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할 글을 새기는 돌을 설치한다고 알리자마자 마감되었을 만큼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승효상 건축가의 말처럼 “미술이라면,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설치미술”이었다. 이렇게 완성된 노무현 묘역은 그 성격도, 모습도 모두 한국 건축에는 없었던 새로운 건축물이다. 유명한 정치 지도자의 무덤이 거대한 국가적 건축물로 만들어지는 터키의 아타 튀르크 묘역, 러시아의 레닌 묘나 베트남의 호치민 묘처럼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고대 이후로는 정치 지도자의 무덤을 거대 건축물로 꾸미는 법이 없었다. 왕이라면 능으로, 위인이라면 비석으로 기릴 뿐이었다. 노무현 묘역은 그래서 한국에 없었던 무덤 건축의 새로운 사례이자, 기존 한국의 ‘죽음의 공간’이 가지는 정신성과 연결되는 맥락을 지니는 건축이다.
또한, 작으면서도 크고, 비어있으면서도 채워져 있는 공간이란 점에서도 새로운 건축, 아니 장소다. 망자의 바람처럼 그의 묘 자체는 5평에 불과하다. 하지만, 묘역 전체는 1000평이 넘는다. 죽은 자에겐 검소한 안식처가, 그리고 그곳을 찾아오는 산 자들에겐 광장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건축물 하나 없이 넓은 세모꼴 광장에 작은 돌비석이 누워있을 뿐인데도 공간은 장엄하다.
이 묘하고 역설적인 묘역을 제대로 보는 방법은 바로 뒤 사자바위에 올라가는 것이다. 약간 땀이 나기 시작할 정도만 올라가면 어느새 사자바위 꼭대기에 이르고, 그 아래 이 묘역 전체의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골목길 무늬가 아로새겨진 이 삼각형은 저 멀리 어디론가를 향하는 화살표 같기도 하고, 막 출발하려는 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건축은 삶을 담는다. 그리고 아주 간혹 죽음을 담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을 담는 건축들 역시 죽은 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남아있는 산 자들을 위한 공간이란 점에서 결국 삶을 담는 곳이 된다. 노무현 묘역의 바닥에 새긴 1만5000명의 글귀는 죽은 노무현을 보러오는 수많은 이들의 발길에 언젠가는 결국 지워질 것이다. 죽음으로 삶을 담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이 건축물 아닌 건축물은 지워지면서 완성되는 새로운 개념의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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