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의 큰별 박완서선생 별세 서민애환 보듬은 `문단의 친정엄마` | |
기사입력 2011.01.23 17:00:28 | 최종수정 2011.01.23 18:41:22 |
지난해 10월 담낭암 진단을 받은 박완서 선생은 조용히 가족을 불러모았다.
"내가 죽더라도 가난한 문인들에게 절대 부의금을 받지 말라." 자신의 병세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선생이 남긴 사실상 유언이었다.
지난 22일 새벽 별세한 박완서 선생은 전쟁과 분단의 상처,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아픔을 소설로 표현해온 `영원한 문학소녀`이자 후배 문인들을 아껴온 `문단의 친정엄마`였다. 고인은 암진단 후 치료를 받아오다 일주일 전부터 병세가 악화돼 다시 입원했으나, 이날 숨을 거두었다.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고인은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질곡의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 손에 자란 고인은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대학을 중퇴해야 했다. 의용군으로 나갔던 오빠마저 부상을 입고 몇 달 후 세상을 떠나면서 전쟁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았다. 그는 입버릇처럼 "6ㆍ25가 없었다면 나는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고인이 뒤늦게 문학의 길에 들어선 건 그의 나이 마흔 살이 되던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면서다.
"내가 죽더라도 가난한 문인들에게 절대 부의금을 받지 말라." 자신의 병세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선생이 남긴 사실상 유언이었다.
지난 22일 새벽 별세한 박완서 선생은 전쟁과 분단의 상처,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아픔을 소설로 표현해온 `영원한 문학소녀`이자 후배 문인들을 아껴온 `문단의 친정엄마`였다. 고인은 암진단 후 치료를 받아오다 일주일 전부터 병세가 악화돼 다시 입원했으나, 이날 숨을 거두었다.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고인은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질곡의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모 손에 자란 고인은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대학을 중퇴해야 했다. 의용군으로 나갔던 오빠마저 부상을 입고 몇 달 후 세상을 떠나면서 전쟁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았다. 그는 입버릇처럼 "6ㆍ25가 없었다면 나는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고인이 뒤늦게 문학의 길에 들어선 건 그의 나이 마흔 살이 되던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면서다.
그는 평생 시대의 아픔과 서민들의 애환을 소설로 썼다. 소박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했던 그는 휴머니즘 문학의 어머니였다.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잃는 슬픔을 겪고 가톨릭에 귀의한 고인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등 자전소설을 펴내며 여성주의 문학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등단은 늦었지만 고인의 작품활동은 왕성했다. 장편소설로는 `휘청거리는 오후` `서 있는 여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등을 펴냈다.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자락 농가주택에서 말년을 보내온 작가는 지난해 투병 중에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내는 등 끝까지 작가의 모습으로 남고자 노력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모두 받았고,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장녀 원숙(작가), 차녀 원순, 삼녀 원경(서울대 의대 교수), 사녀 원균 씨 등 4녀와 사위 황창윤(신라대 교수), 김광하(도이상사 대표), 권오정(성균관대 의대 학장), 김장섭(대구대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6호. 25일 오전 10시 평소 다니던 구리시 토평동 성당에서 장례 미사를 올린 뒤 용인 천주교 공원 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에 든다.
등단은 늦었지만 고인의 작품활동은 왕성했다. 장편소설로는 `휘청거리는 오후` `서 있는 여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등을 펴냈다.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 자락 농가주택에서 말년을 보내온 작가는 지난해 투병 중에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내는 등 끝까지 작가의 모습으로 남고자 노력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모두 받았고,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장녀 원숙(작가), 차녀 원순, 삼녀 원경(서울대 의대 교수), 사녀 원균 씨 등 4녀와 사위 황창윤(신라대 교수), 김광하(도이상사 대표), 권오정(성균관대 의대 학장), 김장섭(대구대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6호. 25일 오전 10시 평소 다니던 구리시 토평동 성당에서 장례 미사를 올린 뒤 용인 천주교 공원 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에 든다.
(02)3410-6916 [허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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