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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시

피서

by 매화연가 2017. 8. 23.






피서

 

황여정

 

바람기도 물소리도

하얗게 말라버린 지독한 열기

목줄매인 짐승처럼

벗어날 수 없는 여름의 한가운데

나무들이 내어준 숲길을 걷는다

나무들이 내어주는 숲길은

실은 나무들이 잘려나간 상흔의 자리다

가슴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을 때

남에게 길을 틔어 줄 수 있는 사람처럼

숲도 그들의 일부를 베어낸 자리에 길을 틔운다

실핏줄 같은 숲길에서 만나는 물소리

마음이 물 같아질 수 없음을

돌 틈을 흐르는 물을 보면서 알게 된다

상처받고 깨어지는 마음은 얼마나 단단하던가

그대 가슴으로 깊이 트인 숨통 같은 길

바람 같은 그리움의 자락 펼치며

나무들이 내어준 길을 걷는다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면

저 흔들림 없는 자유를 얻을까

바람기 없는 숲 속을 걸으며

여름 나무가 전하는 말에

한나절 더위를 잊는다

 

2017. 8.7.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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