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
황여정
바람기도 물소리도
하얗게 말라버린 지독한 열기
목줄매인 짐승처럼
벗어날 수 없는 여름의 한가운데
나무들이 내어준 숲길을 걷는다
나무들이 내어주는 숲길은
실은 나무들이 잘려나간 상흔의 자리다
가슴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을 때
남에게 길을 틔어 줄 수 있는 사람처럼
숲도 그들의 일부를 베어낸 자리에 길을 틔운다
실핏줄 같은 숲길에서 만나는 물소리
마음이 물 같아질 수 없음을
돌 틈을 흐르는 물을 보면서 알게 된다
상처받고 깨어지는 마음은 얼마나 단단하던가
그대 가슴으로 깊이 트인 숨통 같은 길
바람 같은 그리움의 자락 펼치며
나무들이 내어준 길을 걷는다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면
저 흔들림 없는 자유를 얻을까
바람기 없는 숲 속을 걸으며
여름 나무가 전하는 말에
한나절 더위를 잊는다
2017. 8.7.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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