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탈의 상식들
안동 하회별신굿 탈놀이 세상 시름 다 감추고 나처럼 웃어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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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의 맥
경상북도 안동시 하회 마을은 탈춤 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전해지는 하회 별신굿 탈놀이로 유명하고,
탈은 모양만 봐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탈춤을 속이 후련해집니다.
고려 중엽에 하회마을에는 각종질병이 만연하여 마을이 폐허화 되다시피 하였다고 합니다.
허도령은 울적한 마음을 달래 보고자 대낮부터 술을 만취되어 잠을 자는데 꿈에 신령이 나타나
12개 탈의 모습을 보여 주며 100일 동안 탈을 만들어서 굿을 하면 마을에 재앙이 물러가리라 하였다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신령은 온데간데없고 12개의 탈모습만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즉시 금줄을 치고 목욕재계 한 후 뒷 뜰에 있는 오리나무를 베어 12개의 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음식 수발은 허도령을 사모하는 마을처녀가 대문밖에 갖다 놓고 갔다하는데, 마지막 이메탈의 턱을 만들려는 순간
처녀는 허도령의 모습이 보고 싶어 문종이에 구멍을 뚫고 엿보게됩니다.
순간 멀쩡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천둥 번개가 치더니 허도령은 그 자리에
피를 토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이메탈의 턱은 완성하지 못한채 미완성으로 전해 내려온다고 합니다.
남이야 알아 주든 말든, 이 별신굿 탈놀이에 쓰이는 탈을 30년째 공들여 만들어 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1975년 맥이 끊어진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복원하겠다고 20대 젊은이 10여명이 모여 ‘하회탈가면극연구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당시 목공예 기능을 갖고 있던 김완배씨(54세)도 우연한 기회로 연구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하회탈 복원 일을 맡게 됩니다.
"전혀 보지도 못한 탈을 어떻게 만든담!"
하회탈은 이미 맥이 끊어져 만드는 사람이 없었고, 덜컥 시작은 했지만 하회탈의 진품을 구경할 길 없는 그가
참고할 수 있는 거라곤 몇 장의 사진이 전부였습니다.
"진품을 볼 수 없어 사진자료만 갖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평면적인 사진만으로는 하회탈의 볼륨감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실패는 거듭되는데 배우거나 물어볼 곳은 없고. 그래서 초창기에는 완성된 것 보다
땔감으로 폐기되는 것이 더 많았죠."
하회탈의 실물은 구할 수가 없었고, 박물관에는 보존이 되어 있었으나 눈으로 보는 것 외엔 어떻게 할 길이 없었습니다.
막상 탈을 만들어 보니 생각보다 무척 어려웠고,사진을 보고 만드느라 모양을 흉내 내기에만 바빴고,
탈의 표정을 되살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마침내 열매를 맺어, 1978년 하회탈춤 복원에 성공한 데 이어 민속경연대회 장관상 수상,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등을 거치면서 노동부로부터 목공예 명장으로 지정된 김완배씨(하회탈공방 대표).
처음에는 하회탈을 되살린다는 뜻에서 탈을 만들었고, 어느 새 여러 사람으로부터 탈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으면서
그의 생업이 되었지만, 80년 이전까지는 탈만 만들어 살아가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랐다고 합니다.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 두 사람이 한달 꼬박 만들어야 40개쯤 만들 수 있는데, 하회탈이 모두 9개가 한벌이니
한 달 내내 만들어야 5벌밖에 안되는데다 주문도 흔하지 않아 생활을 늘 쪼달렸다고 합니다.
그는 오랜 열정으로 하회탈의 몇 가지 궁금증을 밝혀내는 데 성공합니다.
9개의 하회탈(양반탈ㆍ선비탈ㆍ중탈ㆍ백정탈ㆍ초랭이탈ㆍ할미탈ㆍ이매탈ㆍ부네탈ㆍ각시탈) 중 기생의 얼굴로 알려진
‘부네탈’은, 고려 때 기녀들이 하는 화장을 ‘분대화장’이라 불렀고 분대화장을 한 아낙네를 ‘분네’라 불른데서 나온 이름임을 알아내고,
‘이매탈’의 경우, 우스꽝스럽게 생긴 것을 두고 오랜 옛날 ‘이매스럽다’고 부른 데서 생긴 이름이라는 것도 알아냈습니다.
하회탈의 재료는 원래 오리나무였으나, 요즈음은 단단한 오리나무가 없어 피나무를 쓰는데, 피나무마저 구하기 힘들어
러시아에서 사들여 온다고 합니다.
피나무를 두께 10cm 정도로 잘라 코를 중심으로 해서 얼굴 윤곽을 잡은 다음 칼로 파내어 윤곽을 완전히 드러나게 한다.
광대뼈 위의 얼굴과 턱을 떼어 떨어지게 하고, 칼질로 모양을 완전히 다듬는다.
사포로 면을 고르게 다듬고, 마지막으로 토분과 옻칠을 해 완성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제작과정 보다 탈마다의 독특한 표정을 살려내고, 그 역할이 가진 의미까지 생각하며 탈을 조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는 하회탈 제작은 ‘기다림’의 작업이며, 차분히 한 단계 한 단계 최선을 다해야 하회탈의 오묘한 표정을 재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회탈을 만들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나무를 깎고 한지를 입히고 옻칠을 해야 하는 까다로운 제작과정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에 걸쳐 음지에서 제대로 건조시킨 나무를 써야 하거든요. 천천히 할수록 제대로 한다는 진리를 하회탈을 통해 배웁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옛 가면 가운데 신성가면과 예능가면의 성격을 모두 지닌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고려 중엽에 제작된 나무탈로서 각시탈, 양반탈 등 10종 11개가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하회탈은 상하 좌우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탈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인간의 희로애락이 탈모습에
농축되어 나타나 있습니다.
턱이 움직일 수 있도록 따로 만들어 놓은 탈은 얼굴을 숙이면 어둡고 뒤로 젖히면 밝은 얼굴이 되는 등
표정 변화가 가능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고정턱의 탈에는 좌우상하의 높낮이를 실제보다 확대 또는 축소하여
보는 각도와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느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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