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2006 용인 애버랜드
튤립에 물어보라 송재학 지금도 모차르트 때문에 튤립을 사는 사람이 있다 튤립, 어린 날 미술 시간에 처음 알았던 꽃 두근거림 대신 피어나던 꽃 튤립이 악보를 가진다면 모차르트이다 리아스식 해안 같은 내 사춘기는 그 꽃을 받았다 튤립은 등대처럼 직진하는 불을 켠다 둥근 불빛이 입을 지나 내 안에 들어왔다 몸 안의 긴 해안선에서 병이 시작되었다 사춘기는 그 외래종의 모가지를 꺾기도 했지만 내가 걷던 휘어진 길이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 ……튤립에 물어 보라. - 시집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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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는 네덜란드가 세계의 바다를 제패하고, 무역으로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던 시대다. 이 때 투기의 대상으로 튤립의 광풍이 불었다. 튤립의 소유는 곧 부와 교양의 상징이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광기와 어리석음은 파국을 맞기까지 거의 30년간 지속되었다. 튤립 하나만 잘 키우면 대박이 터지고 인생 역전이 실현되는 ‘폰지게임’의 광풍에 뛰어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암스테르담은 예술과 사랑, 야망과 욕망으로 뒤얽힌 도시였다.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을 것 같았던 비슷한 대형 음모는 그 후 영국에서도 있었다. 이런 광풍이 휩쓸고 간 유럽의 한 도시에서 모차르트가 태어났다. 세살 때 화음을 감지하고 다섯 살 때 작곡을 시작하였으며, 일곱에 교향곡을 작곡하고 열한 살 때 오페라를 작곡한 천재 음악가는 서른다섯 살인 1791년 12월 5일 세상을 떠났다. 튤립만큼이나 난해하고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비엔나 스테판 성당의 첨탑에 걸린 태양 속으로 빨려들었다.
정신과 의사는 끔찍한 충격을 평범한 경험으로 되돌려 놓으려 하지만 시인은 평범한 경험을 짜릿한 충격으로 바꿔놓으려고 한다. 치과의사이기도 한 송재학 시인에게 튤립은 어떤 의미이고 모차르트는 누구일까. ‘리아스식 해안 같은’ 생각 많았던 사춘기에 그 꽃을 처음 받았고, 시인이 ‘걷던 휘어진 길’에 ‘모차르트 더불어 구석구석 죄다 환했던 기억’을 가진 걸 보면 꽤나 ‘짜릿’했을 것 같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랑의 고백’이란 꽃말을 가진 빨강색 튤립에게 다시 한 번 물어봐야할까 보다.
출처 대구문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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