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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클래식

라흐마니노프피아노 협주곡 제2번

by 매화연가 2024. 1. 9.

 

 

 

 

https://youtu.be/qzzy-ovnQns?si=Pdv2WYaCUVyG4w7j

 

본명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

Сергей Васильевич Рахманинов[1]

Sergei Vasilievich Rachmaninoff[2]

 

출생

187341

러시아 제국 노브고로드 주 스타로루스키 군

 

사망

1943328(향년 69)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

 

국적

러시아 제국 미국

 

직업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

 

러시아계 미국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또한 전 세계의 피아니스트들이 뽑은 레코딩 시대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후기낭만파경향과 고전음악 경향을 절충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라흐마니노프는 1873년 러시아의 노브고로드 주 스타로루스키에서 태어났다. 라흐마니노프의 부모는 총 33녀를 낳았는데 라흐마니노프는 그중 4번째 자식이다. 라흐마니노프의 부친은 오랜 전통을 가진 지역 귀족이었으며 모친은 부유한 러시아군 장교의 딸로 결혼시에 상당한 지참금을 가져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유복했다.

 

다른 상당수의 유명한 음악가들처럼 라흐마니노프 역시 어린시절부터 일찍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4세 때 자청해서 피아노를 배운 이후 10대부터 작곡을 했고, 그 시기에 이미 그 끔찍한 난이도의 스크랴빈의 에튀드 5번을 무려 한 시간만에 다 완성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초견력을 가졌으며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작품번호 1번으로(거의 첫 작품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17세에 작곡했는데 자신의 말로는 2, 3악장의 경우 고작 이틀 반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8]

 

그 후 24살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하지만, 평단의 엄청난 비난세례를 받으며[9] 그 충격으로 3~4년간 아무 곡도 작곡하지 못한 채, 라흐마니노프는 엄청난 슬럼프에 빠진다.[10] 이 때문에 이 곡은 생전에 연주 자체가 이루어지질 않았다. 이 시기에 사촌과 결혼했다가 러시아 정교회의 비난을 받아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다.[11]

 

이때의 우울증을 극복하면서 작곡한 것이 바로 회심의 역작 피아노 협주곡 2번이며, 이 명작으로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한다.[12] 기존의 협주곡에서는 오케스트라가 곡을 시작했다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1악장은 저음으로 시작하는 피아노가 마치 반주로 들리며 오케스트라가 주 멜로디를 연주한다. 현대 이전의 곡으로는 드물게 라흐마니노프 본인의 연주가 녹음되어 있고, 그것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13]

 

오늘날 피아노 협주곡 2은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네 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널리 연주되고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곡이다. 특히 2악장과 3악장은 국내외의 많은 영화나 드라마, 텔레비전 광고에 삽입되었다.

 

1악장 2/2박자 c단조 모데라토

악장을 시작하는 피아노 독주는 화음과 베이스가 마치 낮고 무거운 종소리를 연상시키며 교대로 울려 퍼진다. 섬세하고 신중하게 시작되는 타건(打鍵, keying)은 결연한 느낌과 함께 점점 강해지는데, 이렇게 피아노 소리로 만들어낸 종소리는 곡의 시작과 동시에 라흐마니노프의 재기를 알리는 신호탄처럼 들린다. 이후 현악파트에서 제시되는 제1주제는 러시아의 정서를 듬뿍 머금고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4/4박자 c단조

앞선 2악장의 조성 c단조로 시작하여 관현악군의 짧은 경과구를 거친 후 곧 악장의 본 조성인 E장조로 넘어간다. 악장 중간에 경쾌한 스케르초풍의 섹션이 들어있으나 전반적으로 느리고 서정적이며 선율이 아름답다. 이 악장은 세 악장 중에서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악장이다. 특히 주요 선율은 에릭 카먼의 팝송 ‘All by my self’에 사용된 것으로 유명한데, 이 팝송의 가사는 마치 창작의 고통 가운데 고독함에 몸부림치던 라흐마니노프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3악장 E장조 2/2박자 알레그로 스케르찬도

이 역시 앞선 악장의 조성을 이어온 것으로, 관현악군이 춤곡풍 리듬으로 연주하는 경과구를 거쳐서 본 조성인 c단조로 이행한다. 피아노의 경과부와 제1주제를 거쳐, 1악장의 제2주제와 긴밀한 관련을 가지는 제2주제가 등장한다. 구조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발전부와 재현부를 거쳐 이 제2주제는 다시금 절정부에서 강조되어 등장하는데, 이때는 관현악의 합주로 나온다. 이 클라이맥스를 거쳐 음악은 C장조로 바뀌며 승리, 혹은 극복을 암시한다.

 

1897년 내놓은 교향곡 1번은 실패했다. 심각한 노이로제 증세를 겪은 그는 니콜라이 달 박사의 끊임없는 자기암시 요법으로 자신감을 회복했고 1901년 협주곡 2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연주와 모스크바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선율로 이뤄진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이듬해 출판된 이 협주곡은 달 박사에게 헌정됐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은 명반이 많다.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의 구반인 프레빈·런던심포니, 신반인 하이팅크·콘세르트헤바우, 알렉시 바이센베르크와 카라얀·베를린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오먼디·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등이 있다

 

듣는 이를 강렬하게 사로잡는 연주는 역시 스뱌토슬라프 리히테르와 비슬로츠키·바르샤바필하모닉의 19594월 녹음이다. 거장 피아니스트 리히테르의 연주를 서구와 미주에서 접하기 힘들었을 때다. 비범한 피아니즘이 미지의 신비로움을 풍긴다. 리히테르는 실황에서 넘치는 페이소스를 분출하는 데 비해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좀 더 단정한 구축미로 정돈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여기서 리히테르의 피아노는 흡사 파도와도 같다. 기복이 크고 템포의 신축성이 심하다. 환상적인 낭만의 파도가 둑이 터진 듯 밀려온다. 그럼에도 피아니스트의 정신성은 웅혼하고 강해 신파에 빠지지 않는다. 약간 빛바랜 듯한 오케스트라의 색채도 리히테르의 피아노와 잘 어울려 늦가을의 미장센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류태형 < 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