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하면서도 울컥했다. 출연 성악가 18명이 피날레로 이안삼 작곡가의 대표곡 ‘내 마음 그 깊은 곳에(김명희 시)’를 부르자 객석을 가득 메운 600여명 모두가 자연스럽게 따라했다. 아이돌 그룹 콘서트에서 볼 수 있던 ‘떼창’이 가곡 음악회에 등장한 것이다. “내 마음 먹구름 되어~ 내 마음 비구름 되어~ 작은 가슴 적시며 흘러 내리네~” 한마음 합창은 공연에 참석하지 못한채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병원에서 투병 중인 그에게도 닿을 만큼 우렁찼다. “아~오늘도 그날처럼 비는 내리고~ 내 눈물 빗물되어 강물되어 흐르네~”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빨리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 우리 곁으로 돌아오라는 간절한 기도가 됐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늘 행복과 기쁨을 선사하는 이안삼 작곡가의 쾌유를 기원하는 음악회가 19일(일) 오후 2시30분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열렸다. 폐기종 진단을 받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그를 응원하기 위해 성악가, 시인, 그리고 팬들이 '제12회 이안삼의 음악여정'이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마련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정상의 성악가들은 그와 씨줄과 날줄로 엮인 사람들이다. 음악을 매개로 소중한 인연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든든한 도우미들이다. 1부와 2부로 나눠 이안삼의 대표곡 22곡을 불렀고, 모든 노래의 행간에는 "선생님, 빨리 일어나세요"라는 기원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소프라노 임청화는 ‘고독(이명숙 시)’과 ‘천년 사랑(김성희 시)’을 연주했다. ‘K클래식 전도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한국가곡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임청화는 특유의 따뜻한 목소리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나 그대를 사랑하리라~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사랑~ 나 그대를 사랑하리라~" 노래할 땐 가곡에게 바치는 러브송 느낌마저 들었다.
국내 성악가 중 ‘1호 팬카페’를 가지고 있는 이미경은 ‘마음 하나(전세원 시)’와 ‘그대가 꽃이라면(장장식 시)’을 선사했다. 드레스가 아닌 바지를 입고 나와 멋진 패션까지 선보인 이미경은 사람들을 “수많은 별들이 떨어져 피었다는 민들레”로 만들었다. “별 같은 마음으로 지친 땅에 꿈을 주고 험한 세상 솜털에 실어가는 그대는 민들레”를 부르자 모두가 금세 꽃이 됐다.
지난해 대한민국오페라대상 여자주역상에 빛나는 김지현은 ‘월영교의 사랑(서영순 시)’과 ‘느티나무(김필연 시)’를 선보였다. 40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무덤 속에서 발견된 안동 원이엄마의 애절한 편지와 머리카락 미투리가 모티브가 된 ‘월영교의 사랑’은 한마디로 한국판 ‘사랑과 영혼’이다. 폭발적이면서도 섬세한 김지현의 보이스를 타고 흐르는 절절한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성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고음의 끝판을 보여줬다.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작가에 대한 흠모의 마음을 담은 ‘여름 보름 밤의 서신’(한상완 시)에서 콜로라투라의 절정 기량을 뽐냈다. ‘소름 끼친다’를 바로 체험시켜 주었다. “그대에게 그대에게 그립노라 서신 보낸다”라는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온몸의 감각세포가 모두 쭈뼛 곤두섰다. 이에 앞서 부른 ‘나지막한 소리로(고영복 시)’ 역시 김성혜의 진가를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신승아의 ‘나 이리하여(이귀자 시)’, 조경화의 ‘그대 어디쯤 오고 있을까(김명희 시)’, 허미경의 ‘그런거야 사랑은(최숙영 시)’ 등도 깊이있는 감동을 전달해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4월 독창회에서 한가지 주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그만의 스타일을 보여준 이윤숙은 감각적 해석력과 색채감 있는 목소리로 ‘가을의 기도(조재선 시)’를 불렀다. 이현정은 첫 소절을 듣자마자 금방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 ‘우리 어머니(오문옥 시)’를, 정선화는 흥겨운 탱고 리듬이 반짝이는 ‘금빛 날개(전경애 시)’를 멋지게 소화했다.
테너 이현과 이재욱은 우렁찬 남성미를 발산했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음의 긴장이 팽팽하게 이어진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문효치 시)’와 ‘잎새 바람(홍금자 시)’을 선사했다.
진성원이 ‘물한리 만추(황여정 시)’를 부를 땐 깊은 골 아름다운 가을산 자랑하는 영동 물한리 계곡이 콘서트장으로 달려왔고, '꿀포츠’ 김성록이 ‘비록(다빈 시)'을 노래할 땐 바위보다 더 굳은 사랑의 맹세가 생각났다.
바리톤들의 낮고 굵은 저음 퍼레이드도 눈길을 끌었다. 송기창은 소프라노들의 최애곡 중 하나안 '위로(고옥주 시)'를 남성 버전으로 편곡해 불렀고, 석상근은 파도치는 날과 바람 부는 날을 견뎌야 좋은 날이 찾아온다는 '그대 앞에 봄이 있다(김종해 시)'를 연주했다.
특별출연한 이정식과 이태운은 각각 선보인 '그리운 친구여(정치근 시)'와 '애상(이태운 시)'도 촉촉이 마음을 적셨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가 시작되기 전에 이안삼 작곡가의 활동을 담은 동영상이 화면에 플레이되자 관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크고 작은 음악회에 거의 빠지지않고 다니면서 성악가들과 시인들을 격려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비록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링거 꽂은채 병상에서 "여러분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메시지가 나오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공연에 참석한 시인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 이안삼 작곡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문효치 시인이 "아름다운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는 시인과 성악가들의 봉사자다"라며 이안삼 작곡가의 건강 회복을 기원했다.
콘서트 진행은 음악회를 기획한 김정주 아리수사랑 대표와 '그대가 꽃이라면'의 노랫말을 쓴 장장식 시인이 맡았고, 장동인과 이지원이 각각 1부와 2부 피아노 반주로 성악가들과 호흡을 맞췄다. 또 김문기 작가는 사진촬영을 전담했다. 음악회 포스터와 프로그램은 김필연 시인(필디자인 대표)이 재능기부로 도움을 줬다. 이날 공연은 Arte TV에서 생생하게 촬영했고 곧 방송할 예정이다. 공연장을 찾지 못한 한국가곡 애호가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민병무 기자 joshuamin@nate.com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 여성경제신문 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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