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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그리스인 조르바

by 매화연가 2016. 12. 6.



이 책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담장 너머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과 죽음의 공포를 떨치고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한 뼘 이상 성장해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확실하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냐는 문제제기이자 죽음의 공포 앞에서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老子로 풀면 去彼取此(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은 드높은 이상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냄새나고 핏기 가득한 인간의 기본욕구라는 견고한 본질이다. ‘인간의 본질은 야만스럽고, 거칠며 불순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과 육체와 불만의 호소로 이루어진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화자의 깨달음이 와 닿는다.

두목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편지/ 누가 인간인가 묻는다



나와 조르바
 
조르바를 만나는 여정은 길고도 길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는 <희랍인 조르바>라는 책 이름으로 기억한다. 문학소녀이던 둘째 누나의 책꽂이에서 보았다.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책들이 서가에 있었다. ‘과연 이런 책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런데 두 소설의 접점은 의외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이루어졌다. 그가 이야기한 최고의 작가가 피츠제럴드였고 터키 옛 민요의 구절을 따 쓴 먼 북소리에서 그리스 이야기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조르바였다. 난 흑백영화 속의 조르바와 명배우 앤서니 퀸을 명확히 구분할 자신은 없다. ‘주말의 명화를 주름잡던 최고의 배우는 나에게는 폴 뉴먼, 클린트 이스트우드 ,존 웨인, 메를린 먼로 등과 함께 성격파 배우 그가 늘 마음속에 존재해 있었다.
 
2013년이 시작하면서 읽은 책을 서재의 한 칸에 줄로 세우려고 계획했다. <위대한 개츠비><그리스인 조르바>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꿈도 꾸지 못 했다. 그가 먼 북소리에 이끌리어 여행을 떠나고 로마를 거점으로 그리스 여행을 다니며 끊임없이 언급한 인물이 조르바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편의상 무명의 그리스인은 일단 호칭이 조르바였다.
 
영화로는 염소를 잃은 과부가 울면서 지나가는 장면하고 사업 실패 후 해변에서 둘이서 춤추던 장면만 기억이 난다. 그해 교보문고에서 만난 이윤기 선생 번역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산뜻한 책 표지 만큼이나 번역체가 유려하였다.
 
그러나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긴 소설은 쉽게 조르바의 정체를 드러내주지 않았다. 한 장 한 장을 읽어 나가면서 그리스식 용어와 지명과 인물들에 적응을 해나가기 시작하자 속도가 붙었다. 나흘에 걸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다시 읽으니 작가의 수려한 문체, 철학적 단순함, 독자를 사로잡는 감성을 고루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작가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인간의 심연에 흐르는 본능과 견고한 본질을 붙잡고 천착하는 예술가의 혼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영원한 대자유인나의 꿈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란 어려운 이름의 작가가 본 그의 이상형은 조르바였다. 생애 통틀어 읽어본 책이란 <신드바드의 모험> 단 한 권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이 자유인은 인생을 관통하는 그만의 깨달음은 책벌레이자 책상물림이 전공인 이 소설의 먹물 얼치기 자본가를 압도적으로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영적인 삶을 빙자하여 자행되는 종교적 속박과 영혼의 구속 그리고 위선을 폭로하는 조르바는 통쾌하기만 하다.
 
그의 전성기가 한참 지난 늙은 연인 우리의 부블리나 오르탕스 부인은 결국 지난날의 4대 열강 소위 카나바로라는 애인의 지위였던 영광을 수복하지 못하고 가장 인간답게 늙은 65세의 조르바의 곁에서 죽고 말았다. 여자의 한창 꽃다움과 인생은 얼마나 짧던가! 영화 속 흑백의 영상과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절규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이다. 이 둘은 크레타 섬에서 갈탄광 개발을 위해 짧게 체류하면서 인생 최고의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갈탄광의 성공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연히 만나 죽음이란 공포와 주변의 시선을 극복하기 위하여 갈탄광을 개발했는지 모른다. 결국 인생의 꽃 같은 시절을 함께 공유하고 기억하여 비록 사업적 성공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가장 화려했던 순간을 만들어 낸다. 헤어지고 5년간 서로를 못 잊어하고 그리워하면서 조르바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화자인 작가에게 편지를 보낸다. 삶과 죽음을 대하는 여러 인간들의 단면이 나오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나름의 인생을 정리가 된다. ‘내안의 조르바가 명령하는 대로 살 것인가? 도달하기 어려운 신의 명령에 따라 살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조르바처럼 본능에 충실하면서 인생을 꾸려나가는 편이 인간의 본질에 가깝다. 소설 한편 읽었다고 풀릴 문제는 전혀 아니고 두고두고 고민할 문제이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실까? 위선의 수도승처럼 아님 동물 같은 조르바처럼? 가슴속에 남아있는 그 사내의 진한 여운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니코스키 카잔차키스가 평생에 걸쳐 그려낸 조르바라는 인물은 말한다.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다’ ‘그대가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자유라네조르바가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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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여행작가이다
안소니 퀸
그리스인 조르바

작가의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의 묘비명은 불교적 가르침이다.  <반야심경>에서 발췌

無有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