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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신발속 돌맹이

by 매화연가 2014. 8. 5.

신발속 돌맹이

 

▶어제는 장마비가 예고되어 있었고 간흘적으로 비가내렸다. 학창동기들과 20여년 넘게 매주 수요일 비가오나 눈이오나 대공원에 모여 걷기를 하고 있다. 나도 워킹홀릭이 되었는지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망구의 나이인데도 우산을 들고 나온 친구들의 나이를 합산하니 1300세가 넘는다. 비가올 것을 예상하고 운동화를 골라 신었는데 모래알같은 작은 돌맹이가 잘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데 오른발를 어찌나 불편하게 하든지 두어번 걸음을 멈추고 털고야 편안해 졌다. 모래알 같이 작은 것이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구나....
 

▶사람의 발은 손 못지않게 섬세하고 정밀한 조직으로 이뤄졌다. 발은 뼈 스물다섯 개와 근육 열아홉 개뿐 아니라 백일곱 개나 되는 인대를 갖고 있다. 덕분에 사람은 걸을 때 밑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견디고 몸 균형을 잡는다. 감각도 예민해서 아무리 뭉툭하게 생긴 발이라도 금세 이물질을 알아차린다. 신발 안에 모래알이라도 들어가면 거북해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서양에선 일상의 불편을 '신발 안 돌멩이(Stone in my shoe)'에 비유해 왔다.


▶영국 TV 코미디 '미스터 빈' 시리즈 중에 '신발 안 돌멩이' 편이 있다. 미스터 빈이 작은 돌이 든 구두를 신고 절뚝거린다. 빈은 구둣발을 길바닥에 쾅쾅 내리쳐 돌을 가루로 만들려 애쓴다. 구두 바닥을 벤치에 대고 문질러보기도 한다. 빈은 구두를 벗어 도로 옆 승용차 지붕 위에 올려놓곤 발바닥을 긁으며 미소 짓는다. 그러는 사이 차가 신발을 실은 채 떠나자 깨금발로 차를 쫓아가느라 낑낑댄다.


▶신발 안 돌멩이는 '역사적으로 해묵은 숙제'라는 뜻을 담기도 한다. 2003년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알제리 독립 41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방문했다. 시라크는 프랑스가 1830~1962년 132년이나 알제리를 식민 통치한 과거사를 사과했고, 알제리의 독립투사 추모비에 꽃도 바쳤다. 두 나라는 교류 협력을 강화하는 '알제리 선언'을 발표했다. 프랑스 신문 르 몽드는 "두 나라가 신발 안 돌멩이를 빼냈다"며 역사적 화해 순간을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번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업무 보고를 받은 뒤 '신발 안 돌멩이' 비유법을 꺼내 들었다. 박 당선인은 민생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아무리 좋은 구경을 간다 해도 신발 안에 돌멩이가 있으면 다른 얘기가 귀에 들어올 리 없다"고 말했다. 앞서 박 당선인은 중소기업 애로 사항을 빼내야 할 '손톱 밑 가시'로 규정했었다. 이번엔 서민이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한 제도를 '신발 안 돌멩이'로 표현했다.


▶덴마크 영화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아들고서 "영화란 신발 안 돌멩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 본성 속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영상 미학이 돌멩이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그런 돌멩이는 대통령의 신발에도 들어 있다. 측근의 직언(直言)과 국민의 비판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이런 돌멩이를 털어 버리는것도 중요하지만  돌멩이가 호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시원해지고 국민이 편안해진다. 

 
 
Bach- Air on G P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