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계절
김나영
<24시 편의점> 붙박이 탁자 한 켠 한 노숙자가 복권을 긁는다 요긴한 도구처럼 상반신을 삐뚜름히 구부리고 긁고 또 긁는다 다른 동작이 끼어들 틈이 없다 빵이나 소주대신 복권을 사서 긁는 저 노숙자는 한방에 삶이 복권되기를 꿈꾸고 있거나 아직도 포르말린 같은 희망에 취해서 사는 자다 지극히 무모하고도 하염없는 시대가 불발된 숫자가 되어 발밑으로 각질처럼 떨어져 내려도 구부린 등에서는 건강한 리듬이 피어오른다 저 남루 아래 희망처럼 돌돌 말려 있을 누추한 잠바를 치밀고 스프링처럼 올라오는 저 근육질의 파동을 어떡하나 편의점TV에서 이번 겨울이 오래 지체할 것이라는 보도가 유리문 밖에 눈발이 되어 호외처럼 날리고 한 가지 동작에 골몰하는 저 노숙의 몸을 뚫고 곧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만 같다 자고나면 풀잎처럼 빳빳하게 일어나던 수없이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던 몸 수없이 짓밟아 뭉개버리고 싶던 몸 정신이 도무지 앞지르지 못하는 지긋지긋 또 살아지는 몸 머릿니가 득시글득시글 댈 것 같은 그의 머리와 거무칙칙한 손가락위로 수천 킬로의 우주를 통과한 햇빛이 세례처럼 쏟 아지고 창밖에는 노오란 국물같은 산수유가 툭툭 터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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