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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내가 좋아하는 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계절/김나영

by 매화연가 2012. 11. 8.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계절

 

김나영

 

<24시 편의점> 붙박이 탁자 한 켠

한 노숙자가 복권을 긁는다

요긴한 도구처럼 상반신을 삐뚜름히 구부리고

긁고 또 긁는다 다른 동작이 끼어들 틈이 없다

빵이나 소주대신 복권을 사서 긁는 저 노숙자는

한방에 삶이 복권되기를 꿈꾸고 있거나

아직도 포르말린 같은 희망에 취해서 사는 자다

지극히 무모하고도 하염없는 시대가

불발된 숫자가 되어 발밑으로 각질처럼 떨어져

내려도

구부린 등에서는 건강한 리듬이 피어오른다

저 남루 아래 희망처럼 돌돌 말려 있을

누추한 잠바를 치밀고 스프링처럼 올라오는

저 근육질의 파동을 어떡하나

편의점TV에서 이번 겨울이 오래 지체할 것이라는

보도가 유리문 밖에 눈발이 되어 호외처럼 날리고

한 가지 동작에 골몰하는 저 노숙의 몸을 뚫고

곧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만 같다

자고나면 풀잎처럼 빳빳하게 일어나던

수없이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던 몸

수없이 짓밟아 뭉개버리고 싶던 몸

정신이 도무지 앞지르지 못하는

지긋지긋 또 살아지는 몸

머릿니가 득시글득시글 댈 것 같은 그의 머리와

거무칙칙한 손가락위로

수천 킬로의 우주를 통과한 햇빛이 세례처럼 쏟

아지고

창밖에는 노오란 국물같은 산수유가 툭툭 터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