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이기철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이기철
내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앉아 기다렸다
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
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
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
낯선 골목 헤맬 때
어깨 때리는 바람소리 귓가에 들린다
별 돋아도 가슴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려 풀 이름하나 있다면
아픈날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
없던 꽃들이 새로 돋고
없던 풀들이 세상을 채운다
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 번은 생을 떠난다
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
이 흙 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
병을 사랑하자, 삶을 사랑하자
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우리
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할 수 있느냐